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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과 인간혐오

타인에 대한 혐오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혐오다

by 서울일기

한 직장선배와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사람이 싫다. 사람과 마주치기도 싫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가끔 에너지가 고갈된 시기엔 최대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곳으로 다니고, 점심 약속도 가급적 만들지 않고 혼자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어느정도의 긴장과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가 내 스스로 아직 회사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해서일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랜시간 회사에 몸을 담았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선배조차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지금껏 회사에서 "사람이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일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얽히고 부딪히는 일들이 생기고, 크고 작은 불협화음들은 불가피하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루 하루가 매일 시험의 연속이다. 일하는 스타일이 달라서 그럴수도 있고, 누군가의 실수로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닌데도 얼굴을 붉히게 되는 날도 있다. 그저 의사소통 과정에서 서로에게 괜시리 오해가 생기는 날도 있다. 누군가의 툭 던진 말이 다른 누군가의 영혼엔 엄청난 상흔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크고 작은 오해들을 매번 다 풀고 지나가는 것도 어렵고, 풀려고 노력한다고 늘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자꾸 부딪히고 꼬이다 보면 사람과의 만남 자체가 버겁고 힘겹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런날들이 하나 둘 지나다보면 조금씩 인간에 대한 혐오가 쌓일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도 분명 누군가의 인간혐오를 조장하는데 일조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간혐오를 키운 원인제공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인지도 모르겠다. 직장은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며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참 서글프기 그지없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무척 민감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이고, 찰나에 스쳐간 상대방의 표정 하나에도 하루종일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누군가가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오랜 시간 아파하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무심코 건넨 말이나 행동을 뒤돌아 곱씹어 보며 혹시 상대방이 오해할 소지는 없었는지 두고두고 고민하기도 한다. 생각이 많다 보니 고민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내 스스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진할 때도 많다. 무엇보다 이렇게 생각을 깊이 한다고 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가급적 못본척 넘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 스스로도 가끔 별 생각없이 말을 뱉거나 행동할 때가 있고, 어떤 경우엔 단지 개인적인 일로 힘들거나 기분이 좋지 않아 다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별 생각없이 했던 말이나 행동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고 반성할 때도 많다. 하물며 남들이라고 다를까. 매일 전쟁같이 바쁜 하루 속에, 어쩌면 그들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그리 큰 의미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들 결국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것 뿐이니까. 그렇게 조금씩 내려놓고, 역지사지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람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조금씩 덜어낼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실제로 악의가 있는 경우도 있다. 자신보다 직급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유로든 내가 싫어서 악의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적대감은, 보이지는 않지만 신기하게도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래서 어쩔 것인가. 그들의 감정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싫다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찾아다니며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고 좋아해달라고 간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떤 이유라고 할지라도 누군가를 시종일관 내려다보며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인성 문제이지 애초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게 가장 효율적이고 내게 이득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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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좀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에 그토록 쉽게 상처받고 잘 흔들리는 이유가 무언지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국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인것 같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것을 견디는게 무척이나 어려웠고, 솔직히 지금도 그게 참 어렵다. 데일리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모든 사람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상대방의 욕구를 인정하고 채워줌으로써 상대로부터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상대가 미워지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차피 그들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이 모두가 서로 사랑만 주는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아무리 타인을 배척하려고 해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결국 배척만 하며 살아갈 수 없다. 사실 한발짝 떨어져 본다면, 나는 내 길을 갈 뿐이고 저들은 저들의 길을 갈 뿐이다. 좋아하는 것까지는 어렵더라도, '그렇구나, 피차 외로운 길 가느라 고생하는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키우고 싶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말이 쉽지 그게 참 어려운 일이지만, 계속 마음을 단련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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