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에야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누군가의 이야기
20대의 나는 단 한번도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땐 마냥 공부가 하고 싶었다. 딱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공부하는게 좋았다. 그래서 입사원서 한번 내보지 않은 채 대학을 졸업한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후 다시 또 대학원에 들어갔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며 혀를 차기도 했지만, 그래도 당시의 나는 공부를 해야 할것만 같았고, 내 뜻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30대가 되었고, 박사과정에도 진학한 나는 기나긴 학업과 현실과의 괴리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그뿐 아니라 그 사이 친구들과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직장에서 꽤 자리잡고, 그리고 몇몇은 꽤 성공해서 TV 등 매체에 등장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삶과 내 삶이 비교된 것도 사실이지만, 단순히 비교 이상의 무언가가 내 마음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동안 배운 것들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 나도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어딘가에서 쓰임받고 싶은 마음이 샘솟던 시기, 나는 입사원서를 냈고, 정말 운이 좋게도 입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수많은 시간을 공부하며 보냈음에도 업무를 익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론과 실제는 정말 달랐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던 회사생활 역시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전화받는 방법, 보고하는 방법, 보고서를 쓰는 방법, 업무를 해결하는 방식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내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들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잘하는 방법"을 매일같이 검색해보기도 했었다.
한참이 흐른 후에야, 회사생활에서 무엇이든 너무 잘하려고 하거나 욕심내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보니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도 종종 생겼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잘하는 것"과 상사가 생각하는 "잘하는 것"의 방향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고, 실수가 생기더라도 그 이후에 어떻게 대처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며, 특히나 신입사원에게 완벽한 일처리를 기대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을 기본값으로 생각했던 탓에,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거나 사람들과 부딪히는 날에는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업무를 하면서 불가피하게 누군가와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서 또 다시 만났을 땐 서로 웃으며 대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사람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민감했고, 내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심판대에 올려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입사 이후 매일매일이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지우고 싶은 창피한 기억들도 많이 만들었고,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흑역사를 생성하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힘들었고, 끊임없이 크고 작은 시험과 도전들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좌절스럽고 실망스러운 일이 생길때마다, 나는 다음에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고,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를 열심히 생각해두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경우엔, 그 다음엔 다르게 대처해보고,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또 다르게 대처를 해보았다. 그렇게 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나는 나아졌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혼자서 공부만 하고 있을 때는 몰랐던 나의 단점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대처방법들을 보면서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쌓이면서 처음 입사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매우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물론, 아직도 채운 것보다는 채워나가야할 것이 더 많고 부족함이 많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매일매일 내가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몰랐을 것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래도 회사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되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