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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어느날 회사에서 도는 내 평판을 확인하게 되었다

by 서울일기

얼마 전 팀장님이 내게 "본인이 스스로 합리적으로 일하고 행동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쓰지 말라"는 말씀을 뜬금없이 하신 적이 있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아, 뭔가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은게 있으시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확인을 해볼 생각을 하진 않았다.


나도 늘 알고 있었다. 솔직히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바로 짐작해볼 수 있다. 누군가는 나와 말 한번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지만 오며가며 마주쳐도 단 한번도 내 인사를 받아준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늘 나를 대하는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솔직히 나는 내가 들은 것보다 훨씬 최악의 평판을 상상하곤 했었다.


입사하고 2년쯤까지는 회사가 힘들고 어렵기만 했다. 첫번째 팀에서의 좌충우돌이야 신입이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두번째 팀으로 옮겨간지 얼마 안됐을 때 "너는 참 일을 이상하게 한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일을 못한다는 말, 그리고 전임자와 비교하는 말에 와르르 무너져버려서 남몰래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쏟았었다.


"일을 못한다"는 말은 나에겐 가장 치명적인 말이었기에 만회하려 더 열심히 했지만, 그럼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는구나, 나는 조직에 맞지 않는구나, 나는 어딘가 많이 잘못된 사람인가 보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어떻게든 조직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날 그날 내가 잘못한 부분과 고쳐야할 점을 매일매일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번 리스트에 올라온 단점은 다시 발현되지 않도록 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 자신을 옥죄다보니 자꾸만 더 위축이 되는건 어쩔수 없었다.


그무렵의 나는 거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잠깐 잠들었다가도 깨서 새벽 내내 일을, 회사를 생각했다. 혹시라도 일에서 실수할까봐 늘 전전긍긍했고, 불안도가 극도로 높아져 급기야 불안장애 진단까지 받았다.


세번째 팀으로 옮기고서야 그런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었다. 팀에서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분도 생기고, 아직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결과물들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회사에 가는게 즐거워지는 날들도 생겼다. 조금씩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붙어가던 요즘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함께 일했던 차장님이 내게 넌즈시 내 평판에 대해 귀뜸을 해주신 것이다.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고, 그래도 적어도 일을 못한다는 소문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내게 이런 이야기를 전해준 차장님은 말도 안되는 소문이라고 펄쩍 뛰면서, 정말 소문과 같은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회사에 들어와서 초반 2년동안 있었던 일들과 차장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계속 되새김질 하다보니, 차장님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혹여라도 그런 말이 더 안돌게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평판은 정말 중요하다. 한번 어떤 평판을 갖게 되면, 그 평판을 뒤집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나 우리 회사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보니 주니어 초반에 생긴 평판이 퇴사할 때까지 따라다닌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 평판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었다. 평판이 정말 나쁘지만 함께 지내보면 오히려 너무 좋은 경우도 있었고, 평판이 좋지만 나와 잘 맞지 않는다거나 좋은 평판과는 다른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솔직히, 내 평판에 대해 듣고 바로 떠오른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상관없이 그 사건들에 대한 내 대응만 사람들의 입방아에 떠다니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도 수없이 반성하고 자책했고, 또 시간이 흐를수록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결국 다 내 탓이다. 좀 더 다르게 대응할 수도 있었지만 나의 부족함으로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새로운 팀으로 옮긴만큼 더더욱 새로운 마음으로, 과거의 과오들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나를 바꿔야겠다.


하지만 나의 결심과는 별개로 이틀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팀을 떠나기 전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 때문에 야근을 많이 한 탓도 있었지만, 이틀동안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좋아서 만난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일 때문에 같은 공간에 있게된 사람들일 뿐인데, 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는게 왜이리도 내 마음을 뒤흔들고 아프게 하는걸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든, 내 그대로를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데도 나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걸까.


한편으로는 그런 의문도 든다. 내가 다 바꾸면, 나는 회사에 있는게 좀 더 행복해질까?


좀 더 열심히 답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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