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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래미 빵티셸 Jun 03. 2024

#1. 방치되어 나 혼자 큰 줄 알았는데, 사랑이었다.

뒤늦게 깨닫는 아빠 마음

아빠에 대해 애틋해진 게 언제였을까 떠올려본다.  

가출한 엄마를 대신해 우리를 키웠던 아빠.


하루하루 각자의 짐을 이고 지고 사느라 우리 가족은 서로를 가여워할 틈도 여유도 없이 살아낸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을 가여워했고, 결핍에 빠져 살았으며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이 집구석이 버겁고 힘겨웠다.


방황하는 오빠, 가장의 무게에 버거웠던 아빠, 방치된 나. 집에 아무도 없는 날도 많았고, 무서워서 밤새 티브이를 켜둔 채 잠든 날도 많았다.


시간은 무던히도 흘렀고, 성인이 된 후 직장인이 되어서도 늘 이 집에서 나오고 싶었다. 뫼비우스의 띠 같던 우리 집.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결혼으로 도피를 하고 싶었다.


그래선지, 입버릇처럼 일찍 결혼할 거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말이 씨가 된 건지.. 26살에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내가 노력하면 바뀔 수 있는 가족을 꿈꾸며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거라 주문을 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 스스로가 대견했다. 돌봐주는 이 없어도 엇나가지 않고 내 삶을 살아낸 나.


난 나 혼자 컸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깨어진 건 결혼을 준비하면서 마련한 상견례 자리에서였다.


상견례에서 시댁 식구들은 어머님, 아버님, 남편, 시누, 아주버님, 1살짜리 아가까지 총 5명이었고, 우리 집은 아버지와 나 단둘뿐이었다.(친정오빠는 회사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시부모님은 좋은 분이셨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죄지은 사람처럼 절절매셨다.


그러다 툭 나온 이야기가 “홀아비 밑에서 자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죄송합니다.”였다.


그날 그 문장 하나가 나를 뒤흔들었다.


왜? 아빠가 죄송해? 아빤 최선을 다했는데.. 왜 아빠도 피해자일 뿐인데 이렇게 절절매는 거야..? 아빠가 못해준 게 뭔데..?


그렇게 내 머릿속으로 아빠라는 물음표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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