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깨닫는 아빠 마음
아빠는 유명한 58년 개띠. 185cm 큰 키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내가 일했던 한의원 원장님 말을 빌리자면 아주 옛날에 태어났다면 장군이셨을 체구라고 했다.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고, 형 누나 누나 누나 아빠 남동생 남동생으로 구성된 비운의 둘째 아들.
경제적 지원은 첫째 아들이 다 받고, 집안의 수발은 모두 다 짊어져야 했던 아들.
할머니의 병시중을 중학교도 못 간 채 들었고, 많은 지원을 받았던 첫째 아들 내외가 골방에 외면한 할아버지 병시중 또한 아빠의 몫이었다.
억울함이 많은 삶. 아빠도 나처럼 집구석이 지긋지긋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결혼하면 좀 나아지리라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 기대가 무색하게 바람 잘날 없던 우리 집. 병치레가 잦은 아들. 집을 나간 아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
그 모진 세월을 아빠는 담담히 걸어갔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다는 듯이 그저 살아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세상을 원망할 힘도 누구를 탓할 여력도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렇게 살아 낼 수밖에 없었을 아빠.
사람마다 정해진 고생의 양이 있다는 말이 맞다면, 아빠의 고생의 양은 우리 남매가 성인이 되며 끝물인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부양할 가족이 없었지만, 아빠는 일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건강이 안 좋아지며 그제서야 일을 내려놓게 되었다.
일을 하지 않으니 육체적 피로는 없어졌으나, 쏟아져 나오는 시간의 파도 속에서 아빠는 오히려 삐걱 대기 시작했다.
열심히 살아내는 것만 알던 아빠에게 시간적 여유는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이 아닌 거센 파도로 휘몰아치며 과거로 걸어가게 했다.
작년 어버이날. 아이들과 찾아간 친정집에서 아빠가 기분 좋게 한잔을 걸치다 말고 이야기했다.
본인의 삶이‘참 재수 없었구나.’ 싶었노라고,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재수 없는 아빠를 만나 너희가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하면서 산 것 같다며 아빠는 한참을 우셨다.
그렇게 태산 같았던 아빠는 온데간데없고, 그동안 꽁꽁 숨겨뒀던 여린 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왜 아빠의 삶이 재수 없었던 건 원망하지 않는 거야.
고생이 당연한 사람이 어딨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