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깨닫는 아빠 마음
엄마가 집을 나간 지 올해 기준 25년이 지났다. 우리 남매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아빠는 엄마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대체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대부분은 엄마가 집을 나갔을 당시 이야기에 치중되어 있어서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부분도 많다.
내 기억을 기준으로 나열하자면, 엄마와 아빠는 누군가의 소개로 만났다고 했다. 아빠가 군대 있을 당시에 면회를 왔었다고 하니, 꽤 오래 만남을 이어오다 결혼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주변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부모님 연애사는 좀 크면서 결혼할 즈음이나 자식들이 연애를 시작할 때쯤? 어떻게 만났는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거 같건대.. 나는 나눌 기회가 없었다. 흘리듯 말했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결혼 후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 주택 옆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내가 2-3살 되던 해에 지금의 친정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이사를 오면서였는지, 오기 전 인진 확실하진 않으나..
큰아빠 집 골방에 버려졌던 할아버지도 모시고 와서 병시중을 했단다. (이 부분은 아빠가 엄마에게 고마워하는 몇 가지 안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내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릴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부부가 함께 겪어 낸 것이다.
그렇게 함께 고생하며 지냈던 엄마아빠가 틀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명확했다. “종교” 정확히 말하자면 “사이비 종교”였다.
내 위로는 3살 많은 오빠가 있는데, 오빠는 자주 아팠다. 큰 병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열이 났다 하면 고열이라 오빠를 둘러업고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다.
두 번째 열경기에 이르렀건 날. 의사는 부모님을 앉혀놓고 “ 한 번만 더 열 경기를 하게 되면, 뇌손상이 생겨 장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 똑같이 충격을 받았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한방 쪽으로 침을 잘 놓는 사람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