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깨닫는 아빠 마음
12년 전 내 나이 25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야겠다며 남편을 데리고 갔다.
남편은 6살이 많았고, 좋은 사람이지만 결혼을 생각한 건 아닌 연애였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 사실을 깨달았을 땐, 혼란스러웠다. 확신도 없었고 아이 때문에 무언갈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울 자신도 없었다. 평생의 죄로 짊어지고 살아갈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성인이었고 조금 이르다는 것과 준비된 게 없이 시작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하니까. 거기에 현실적으로 둘 다 직장도 있었고 경제적 문제도 괜찮을 거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듣자마자 반대했다.
남편이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 너무 나이가 이르고 준비가 안된 결혼은 고생할 것이 훤하다는 게 이유였다.
아빠는 완곡하게
“ 내 자식이 고생할게 훤히 보이는데 그 길을 가게 할 부모가 어딨겠냐”라고 말했다.
며칠의 냉전이 지속됐고, 나의 마지막 한마디로 아빠는 결혼을 승낙했다.
“아빠 자식이 나라서, 나를 포기 못하는 것처럼 나는 뱃속에 애가 내 자식이라 나도 포기 못해 아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고 한번 친 거라 생각하고 이해해 줘 아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그렇게 나는 6월의
신부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아이는 태어난 지 15일 만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임신 중 아무 이상도 없었는데 낳자마자 들린 심잡음으로 신생아 중환자 실로 옮겨졌고, 그렇게 끝내 퇴원하지 못하고 영영 떠나 버린 것이다.
아이가 하늘로 떠나던 날. 무슨 정신으로 아빠에게 말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빠는 한달음에 달려와, 우리 신혼집에서 같이 자면 안 되냐고 물었다.
혹여라도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염려되어 물으신 거겠지만, 난 괜찮으니 내일 병원으로 몇 시까지 오라고만 말했었다.
그날 아버지는 반대한 본인 때문에 손주가 잘못된 건 아닐지 자책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우리 아이를 화장시키며 화장터에 앉아 아빠 손을 잡으며 말했다.
“ 아빠 고마워. 내가 만약에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으면 나 못 일어났을 거 같은데, 그동안 살면서 고생한 게.. 그것도 경험이라고 나 알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란 거 다 기억하고 있어 아빠. 걱정하지 마.”
그거 아빠가 알려준 거잖아. 아빠가 아빠 인생으로 가르쳐준 거잖아. 내가 모를 수 없지.
그래서 정말 고마워 아빠.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