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딸래미 빵티셸 Jun 15. 2024

#17 내가 아빠한테 물려받은 것.

뒤늦게 깨닫는 아빠 마음


요즘 친구들은 교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교복만큼 고마운 것이 없었다.


교복 뒤에 꽤 많은 것을 숨길 수 있었는데, 세탁만 잘해서 입어도 티가 잘 안 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엄마 없는 티. 돌봐주는 사람 없는 티. 가난한 티. 같은 것들 말이다.


중학교는 집 근처 여중으로 진학하여 교복 뒤에 숨어, 말하지 않으면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잘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보호막이 깨지고 말았다.


그 시절엔 인문계 고등학교는 지역 내에 학교 지망순위를 적어 뺑뺑이를 돌리는 시스템이었는데, 하필 제일 끝 학교로 떨어진 것이다.


집에서 멀기도 멀었고, 가장 큰 문제는 그 해 개교하는 학교기 때문에 교복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옷장을 보고 깨달았다. 나에겐 옷이 참 없다는 사실을..


17살 여자아이들 심지어 공학인 학교. 철저히 내 위치를 알게 되는 기분이었다.


초반엔 친구들이 꽤 생기다가 점점 그 무리 안에서 동떨어지는 느낌에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계속 겉돌고 여자아이들 무리에서 제외되며, 나의 불행을 매일 확인하는 시간들.


엄마가 된 지금 다음 계절이 되기 전에 옷 챙기는 것에 열정적인 이유가 이런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아이들의 행사나 일이 생기면 꼭 옷을 사고, 미리 뭘 입을지 예쁘게 입혀 혹여라도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 나도 아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준비해야 안심이 된다.


이런 일을 아빠는 전혀 모르셨다. 아빠 시대엔 굶지 않고, 잘 곳 있으면 잘 살고 있다 생각했기에 그저 내 자식들이 밥을 먹고 있고 길거리에 나앉지 않았으니 행복하겠거니 생각하셨단다.


어찌 보면, 나도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말하진 못했다. 적어도 아빠라는 보호막이 있기에 생존을 넘어 다른 게 눈에 보인 거겠지.


그러다 내가 엄마가 되고 아이들이 다 입학을 하면서 아빠는 많이 씁쓸해하셨다.


이제야 아빠눈에는 보인 거다. 내가 결핍으로 인해 내 자식들에게 하는 행동들이 아빠가 키우면서 나에게 못해줬던 것들을 메꾸고 있는 것을..


나의 외모는 엄마를 닮았으나, 성격면에서는 아빠를 닮았다. 그렇기에 아빠도 철저히 본인의 결핍을 자식에게 대물림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닮았다. 그러니 모를 수 없으신 거겠지..


아빠의 노력으로 나는 굶지도, 구박받지도, 배우고 싶으면 배울 수도, 집에서 쫓겨나지도 않았다.


그게 아빠의 원동력이고 힘이었을 테니, 비록 본인이 지치고 자신을 갉아먹더라도 그것 하나로 버틴 것이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결핍들이 많아 딸래미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미안하고 마음이 저린 것이다.


그렇지만 아빠, 나는 결핍이 있기에 성장했어.

미안해하지 마. 그리고 가장 큰걸 나한테 줬잖아.

견디는 마음, 결핍을 탓하기보다 그걸 물려주지 않으려는 노력.


그래서 나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지 않을 거야. 지금의 내가 꽤 마음에 들거든.


이 정도면 나도 아빠도 잘 산 게 아닐까?




이전 16화 #16 때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마음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