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스티비 원더 내한 공연을 추억하며
2010년 8월 10일,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내한 공연의 첫 무대는 ‘My eyes don’t cry’였다. 무대에 선 형님은 아코디언을 들고 신들린 연주를 뽐냈다. 관객들의 미친 환호에 형님은 몹시 흥분한 듯 보였다. 형님은 무대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빙글빙글 돌기도 했고, 역시 몸을 누운 채로 앞뒤로 바닥을 쓸며 곡예에 가까운 아코디언 연주를 보여줬다. 내 눈으로 직접 형님의 용체를 보다니! 하찮은 이어폰 따위의 개재 없이 내 귀로 직접 형님의 소리를 듣다니! 그 순간 약 2002년식으로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공연은 완벽했다. 형님의 소리는 분명 늙었고, CD로 익힌 소리와는 꽤 달랐지만 소울과 바이브만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관중들의 떼창은 가끔 거슬렸지만 전반적으로 끝내줬다. 관중들의 흥에 고무된 형님도 공연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곡을 따라 부르며 목이 쉴 수 있는 공연을 나는 얼마나 바라 왔던가. 나는 결국 그날 목청 탈내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며칠을 알아 누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농담은 아니다.
그 해 9월에 나는 훈련소에 들어갔다. 훈련소에 입소하며 나는 모닝 글로리의 다이어리에 스티비 원더의 노래 가사를 열심히 적어 가지고 들어갔다. 힘들고 지칠 때, 나는 그 가사들을 소리 내어 읽었고, 눈을 감고 콘서트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내 옆에서 같이 잠자고 훈련받던 순수한 동생 하나는 내게 “형, 영어로 일기 써요? 대박이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렇다.”라고 했다. 바로 검증할 수 없기에 훈련소란 각종 무용담과 허언이 가득한 곳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부러 먼저 드러내진 않았지만 누군가 나를 궁금해하며 뭔가를 확인하듯 물어올 때, 나는 그것의 성격이 그리 나쁜 것이 아닌 경우라면 대부분 “그렇다.”라는 대답을 내놓곤 했었다. 그간 억눌러온 일종의 허영심이 드러나는 비겁한 순간이었다.
노래란 우리를 특정 시간과 공간으로 불러오고 또 불러내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나는 지금도 스티비 원더의 어떤 음악을 들으면 고등학교 시절 찬바람 쌩쌩 불던 하굣길의 한가운데로 나가떨어지는데, 그때의 비릿한 공기 냄새를 나는 아직도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다. 하굣길의 MP3 이어폰, 스티비 원더의 노래들 그리고 비릿한 겨울 공기...... 또는 2010년 8월 10일, 내한 공연이 펼쳐지던 당일의 덥고 습한 날씨가 떠오르기도 한다.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그 흥분에 가득 찬 울림과 그 울림을 전해받고 몹시 뛰던 내 심장까지도...... 또는 그리 달갑지 않은 2010년 10월의 훈련소 생활관의 견디기 힘들던 역한 남자 냄새와 땀 냄새까지 기어코 오늘의 나를 보러 놀러 온다.
아, 그런데 정말 어쩌자고 음악이란 그토록 기억력이 좋은 걸까.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