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Feb 19. 2019

당신은 왜 그리 열심히 읽고 쓰십니까?

별 건 없지만 제 입장은 이렇습니다.

책에서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반드시 적어 둡니다. 몇 번이고 읽다 보면 제 생각이 되거든요.


작가 김훈은 어떤 인터뷰에서 서재를 막장이라고 일렀다. 그렇다면 나는 막장 인생을 살아온 셈이고, 나아가 일정 부분 막장에서 개조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훈 작가는 말했다.

‘책에 의해 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중등학교와 대학 시절, 나는 책을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미친놈처럼. 그 시절의 내 꿈은 미국의 힙합 음악을 온종일 틀어놓은 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었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이나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장 그르니에의 ‘섬’을 드러내 놓고 읽던 중학생의 허영은 비록 책의 내용을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끝내 문학책 한 권을 다 읽어냈다는 야릇한 성취감과 쓸데없는 정복욕으로 번져 있었다. 누구나 한때는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무언가에 미쳐보곤 하는 것이다. 그 시절의 내가 막연하게나마 믿고 기대하던 ‘책 읽기’의 효험은 어제와 오늘의 한 줄 또 한 줄이 모여 언젠가 내 인생을 조금은 빛나게 해 주리라는 낭만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지고, 그 인생의 점들은 오직 과거를 돌아볼 때 그제야 연결할 수 있다는 잡스의 이야기는 이십 대 시절의 내게 크나큰 축복의 말씀처럼 들렸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는 학생부장님께 두 번인가 뒤통수를 맞았다(사실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제1장을 읽다가 한 번, 작가의 이름도 가물가물한 어떤 유치한 추리 소설을 읽다가 또 한 번. 학생부장님께서는 내게 그냥 공부나 하라며 일갈하셨는데, 나는 그때 번뜩 깨달았다. 그래, 분명 책 속에 길이 있는 거라고.


멋대가리 없는 매일 속 열심히 책을 읽고 또 무언가를 부지런히 써서 기록해 남기려는 나의 진심은 무얼까. 읽고 쓰기를 통해 내 삶의 일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려는 시도일까. 아니면 다른 거창한 명분이나 이유가 있어서일까. 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멋있는 답변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멋진 답변을 잘할 줄도 모르고 열심히 만들어낼 줄도 모른다(큰일이다). 나는 그저 누군가에게 내 진심을 전달해 상대를 내 편으로 '바꾸기 위해' 부단히 쓰고, 누군가가 쓴 좋은 글을 만나 나의 못된 버릇을 '바꾸기 위해' 부지런히 읽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옛날 옛적, 중국의 장자라는 아저씨는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 사이를 택하겠다고 말했다던데, 글쓰기와 책 읽기는 내게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의 중간에 자리를 잡고 가끔씩 한쪽으로 기울며 나를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또 무감각한 지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 있어 책 읽기와 글 쓰기만 한 매개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실로 중요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이 위대한 건 시간을 막 거스르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