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의 시대 속 창조 경제, For All To Envy
이 시대 가장 트렌디한 래퍼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그의 Aura를 구성하는 요소는 수백 가지, 수천 가지를 거뜬히 넘겠지만, 그의 독창적인 '트랩 뮤직'과 아메리칸 영 앤 슈퍼 리치 와이프 '카일리 제너Kylie Jenner' 그리고 '패션'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는 아마도 그의 존재감을 가장 빛나게 하는 영광의 TOP 3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디자이너 브랜드와 스트리트/빈티지 브랜드를 적절하게 섞어 뽐내는 그의 개성적이며 일관된 패션 감각은 뭇 힙합 찌찔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데, 나는 오래도록 '대리 만족'이라는 숭고한 개념을 들이밀며 소위 간지가 터지는 그의 스타일을 칭송해 왔다. 개인적으로 '힙합 스트릿 패션'의 소화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개인의 신체 비율과 눈, 코, 입의 적절한 조합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하는데, 트래비스 스캇의 경우 가끔씩 터져 나오는 타고난 빈티를 제외한다면 꽤 멋지고 쿨한 패션 센스를 보여주기 바쁘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브랜드는 주로 '명품 브랜드'에 속하는 것들인데(라프 시몬스, 릭 오웬스, 생로랑, 헬무트 랭 등은 그가 좋아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들이다), 그것들과 함께 그가 아주 빈번히 섞어 입는 빈티지 패션 브랜드가 하나 있다. 바로 미국의 'FOR ALL TO ENVY'다. 오늘은 이 브랜드의 편집의 기술 그리고 아이디어에 대해 짧게 글을 써볼까 한다.
'FOR ALL TO ENVY'는 캘리포니아에 본거지를 둔 빈티지 패션 브랜드다. 한국 패치를 적용시키면 빈티지 구제 상점 정도가 될 수 있겠는데, 브랜드의 핵심 컨셉은 ‘빈티지’와 ‘패러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의 회사 소개를 들여다봐도 ‘십 수년간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빈티지 제품을 제공해왔다’라는 간결한 인사말 한 줄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80, 90년대 락/힙합 아티스트, 레슬링 스타 또는 생활문화 전반에 걸친 아이코닉한 사진, 디자인, 브랜드 등이 큼지막하게 프린팅 되어있는 최소 20년 이상의 세월을 견딘 빈티지 티셔츠(흔히들 머천다이즈나 굿즈라고도 표현하는 것들이 많이 포함된다)를 판매한다. 또한 AAA나 Hanes, Champion 등의 무지 티셔츠 위에 자신들만의 새로운 해석을 담아 패러디의 컨셉을 가미한 자체 제작 상품을 창조 경제의 느낌으로 만들어 비싸게 팔아치워버리고 있다. 다른 게시물을 통해서 몇 차례 가볍게 언급한 바 있으나 요즘은 부정할 수 없는 대편집의 시대이고 보면, 브랜드 For All To Envy는 패션 분야에 있어 똘똘한 편집의 기술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최근작을 통해 구체적 편집의 크리에이티브를 한 번 확인해보자.
올드스쿨 힙합을 즐겨 들었거나 그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For All To Envy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게시물에서 볼 수 있는 챔피온 스웻 후디드 티셔츠와 칼하트의 스웻셔츠 위에 새겨진 문구가 꽤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미국 힙합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인 RAEKWON의 'ONLY BUILT 4 CUBAN LINX...' 그리고 전설적인 미국 힙합 그룹 WU-TANG CLAN의 첫 언더그라운드 히트 싱글이자 그들의 1집 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PROTECT YA NECK'이라는 문자를 흔하디 흔한 챔피온과 칼하트의 티셔츠 위로 데려와 새롭게 꽃피게 한 것이다. 브랜드 VETEMENTS와 PYREX, SUPREME을 떠오르게 하는 For All To Envy의 전략전술의 방점은 결국 '편집'과 '재창조'라는 개념 위에 강하게 내리 꽂힌다.
사실 오래된 빈티지 의류를 kg 단위로 대량 구매하여 판매하는 도처에 널린 '구제 장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상점 For All To Envy가 미국 힙합 씬의 패션 선구자이자 동서 지간인 트래비스 스캇과 카니예 웨스트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 단순히 빈티지 옷을 떼 와서 장르 구분 없이 무더기로 판매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명확한 타깃 설정과 그에 맞는 센스 있는 상품 셀렉팅의 유효함을 보여주었다는 점, 둘째, 별 볼 일 없는 빈티지 의류나 베이직 무지 티셔츠 위에 80년대와 90년대의 감성이 진하게 벤 힙합, 스포츠, 대중문화,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아이디어와 컨셉을 담아냄으로써 '이야기'를 잘 팔았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자신의 가치관과 입장을 잘 대변하는 ‘코드’와 '이야기'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싶은 건 본디 자기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입장 때문이고, 그런 아이디어가 깃든 브랜드는 결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되어 있다.
For All To Envy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고 있는 위 사진 속 티셔츠를 한번 보자. 흰 무지 티셔츠 위에 크게 프린팅 되어 있는 사진 속의 주인공은 캐나다 출신 전 아이스하키 프로 선수 클린트 말라축Clint Malarchuk이다. 1989년 3월 22일, 당시 뉴욕 버펄로 세이버스에 소속되어 있던 클린트 말라축이 상대팀 선수의 스케이트날에 오른쪽 목 앞을 베이며 아이스하키 경기장의 새하얀 빙판 위에 엄청난 피를 흘리는 큰 사고를 겪게 되는데 현재까지도 스포츠 역사 상 가장 심각한 부상 중 하나로 회자되는 이 사고를 적나라하게 담은 사진을 흑백 처리하여 티셔츠 위에 담고 그들은 'Protect Ya Neck(네 모가지 조심해)'이라는 제목을 달아 판매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다시 부연하자면 ‘Protect Ya Neck’은 미국 올드스쿨 힙합 그룹 WU-TANG CLAN의 언더그라운드 데뷔 히트 싱글의 제목을 그대로 딴 문장이다. 만일 어떤 브랜드에서 이와 똑같은 티셔츠를 'Neck Injury' 또는 'Neck Blood' 정도로 정해 아무런 컨셉과 내재된 스토리 없이 발매했다면 결과가 과연 어땠을까를 상상해본다. 음, 판매는 고사하고 혐오스러운 프린팅 사진에 대한 클레임이 빗발치지 않았을까. 그들은 현재의 힙합 정신의 정신적 고향이자 뿌리가 되는 90년대 초반 올드스쿨 힙합의 대명사인 우탱 클랜의 빛 바랜 아이디어를 지금 여기로 불러와서 일종의 컨셉 차용만으로 새로운 창조 경제를 실현한 것이다. 시장에서 파는 옷을 잔뜩 떼와서 택만 갈아 판매해 이윤을 챙기는 자칭 크리에이티브 패션 기업들의 창조 경제만큼이나 똑똑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편집의 기술이란 결국 시각의 문제이고, 니즈는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이야기와 감성을 파는 것이라는 JOBS와 APPLE식의 철 지난 클리셰는 앞으로도 영원히 반복되며 또 철 지날 것이다. 구체적인 타깃에 집중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면 보잘것없는 25년 된 빈티지 티셔츠 한 장에 웃돈이 붙는 것이고, '저런 건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는 군말이 '진짜 나도 만들어서 팔아볼까'라는 실행력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