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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Feb 25. 2019

정치인 김한길? 작가 김한길!

나의 밤잠을 설치게 한 작가 김한길

어제 김한길 선생님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해냄 출판사에서 낸 선생님이 쓴 일기 ‘눈뜨면 없어라’를 읽고 밤잠 설쳤던 학창 시절의 어느 날부터 내 맡에는 늘 선생님의 책이 함께했다. 인간미 넘치는 청년 김한길, 중년 김한길은 늘 내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줬다.

한국 작가의 글맛이 이토록 끝내줄 수 있다는 걸 나는 김한길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때론 섬세하게 글을 조각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시원하고 통쾌하게 글을 내지르며 확 뛰쳐나가는 그 세련된 강약 조절은 독자를 자기 페이스대로 가지고 노는 듯했다. 적어도 내게 한국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 김영하가 아니라 작가 김한길이었다.


1993년 2월 22일, 나는 무려 4살이었다.


김한길의 소설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성인의 길목에 접어들 때면 누구나 자기를 온통 휘어 감는 인물과 만나게 된다. 그 인물은 대학 선배일 수도 있고 동네 형일 수도 있으며 좋아하는 가수일 수도 있고 드라마 속 주인공일 수도 있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작가 김한길이 그랬다. 해냄출판사에서 낸 오래돼 누렇게 바랜 그의 절판 책들을 구해서 읽었을 때는 어린 시절 정말로 가지고 싶어 까무러칠 것만 같던 비싼 장난감을 선물로 받았을 때처럼 순수한 행복의 감정을 느꼈다.


그는 그의 에세이에서 멋 하나 부리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툭툭 던졌다. 그의 생각은 조금도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았고 또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배배 꼬여있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그의 글을 좋아했다. 그의 글은 늘 통쾌하고 시원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그토록 좋아하게 된 건 피츠제럴드의 짧은 문장 속에서 절대적 공감의 언어를 발견하며 내 몸에 돋은 소름 때문이었는데, 김한길의 에세이(특히 ‘눈뜨면 없어라’) 또한 내게 때로는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언어로, 때로는 깊이 생각하고 오래 고민해 내뱉은 잘 정제된 문학청년의 통찰의 언어로 무한한 공감과 감동을 선물해주었다.



군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로 기억하는데,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김한길 선생님을 팔로잉하고 무심코 날린 트윗에 ‘밤눈을 감지 못하게 해 미안하다’라며 센스 있는 답변을 달아줬던 선생님의 트윗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작가님은 아직도 가끔씩 제 밤눈을 감지 못하게 하시거든요.


선생님, 어서 건강 회복하셔서 좋은 글 하나 발표해 주세요. 그래서 밤에 잠 좀 덜 자게 해 주세요. 저 밤잠 좀 설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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