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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Mar 03. 2019

영화 <최악의 하루>

여자의 거짓말이 그리 대수로운 건 아니니까요.


"뭐라고 하시든 상관 안 해요. 그냥 제 직감을 믿을래요."

(중략)

나는 여자의 직감을 크게 믿는 편이 아니다. 여자의 직감은 그 여자가 믿고 싶어 하는 것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서머싯 몸 <면도날> 중에서



여자의 거짓말이 그리 대수로운 건 아니라고 말한 건 피츠제럴드였다. 그런데 사실 남자건 여자건 우린 모두 거짓말 해대며 산다. 즉, 인간의 거짓말이 그리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나는 내가 만든 거짓말에 스스로 감탄하곤 한다. 어떤 때의 거짓말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 자신도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거짓말은 때론 너무나 유익해서 그것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편하게 일삼는 거짓말은 보통 그것의 목적이 아주 극악한 것은 아니고, 대개 '자위'와 관련되어 있다. 나를 위한 거짓말인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한 거짓말이 결국 남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게 되기에 나를 위한 거짓말이라는 변명은 하나 마나 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이라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는 상종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말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그 사람의 인생은 자주 피곤해질 뿐이다.


영화 <최악의 하루>는 주인공 은희가 세 남자와 얽혀 보내는 최악의 '하루'를 그린다.

주인공 은희는 연기를 배우고 있다. 그녀는 평소 거짓말을 잘하는데, 남자 친구가 하는 거짓말은 잘 참지 못한다. 일본인 료헤이는 '거짓말'을 글로 쓰는 일(작가)을 한다. 출판사의 '거짓말'에 속아 한국에 왔는데, 우연히 은희와 만나게 된다. 현오는 은희의 남자 친구다. 은희와 현오는 둘 다 바람을 피워봤고 그것에 대해 서로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낮보다는 밤에 모텔과 부티크 호텔에서 만난다. 거짓된 관계의 목숨을 연명해가고 있다. 운철은 한 번 갔다 온 남잔데, 그것을 속이고 은희를 잠깐 만난 적이 있다. 운철은 전처와 재결합을 할 예정인데, 은희를 다시 만나고 싶고, 은희가 이러한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상황의 연속이다.


그럴 때가 있다. 멀쩡한 표정을 하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주변 사람들이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이지 궁금할 때, 상대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정말 나의 진심인지 나를 대하는 상대의 태도가 정말 상대의 진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때, 애초에 끝났어야 마땅한 거짓된 관계에 억지로 '진심'이라는 말로 포장한 또 다른 거짓말을 담아보려는 가증스러운 노력이 역겨울 때, 빤히 수가 보이는 꾐으로 가득한 말들로 진저리가 날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던 사람이 너무 싫어질 때, 좋아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사람이 좋아질 때. 나는 '그럴 때'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질 것 같다.


내가 감히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건방 떨며 이야기할 위인은 못되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좀 구린 것이란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구린 인생의 더러운 꼴을 가려주는 것이 바로 거짓말이고, 그렇기에 도리어 거짓말이란 놈이 참 매력적인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음, 뭐든지 적당하면 좋으련만. 은희는 그러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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