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여주는 여자> 그리고 불편한 사각지대에 관하여.
운전 왕초보 시절,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고속도로에 올랐던 그날을 기억한다. 고속도로에 막 들어서서 안쪽 차선으로 진입하기 위해 핸들을 살짝 틀며 차체를 왼쪽 차선으로 밀었을 때, 갑자기 고막을 울리는 경적소리와 함께 검은 세단 하나가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휙 지나갔다. 아오, ㅆㅑㅇ! 식겁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운전 왕초보에게도 위험을 감지하는 어떤 타고난 인간의 감각 같은 것은 있는 모양인지 나는 재빠르게 핸들을 도로 돌려 위기의 상황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사각지대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고, 사고라는 것이 이토록 쉽게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섬뜩했다.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봤다.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집중적으로, 아주 의도적으로 다루는 영화였다. 코피노, 트랜스젠더, 장애우, 노인이 한 번에 등장하다니! 말 다 했다. 이렇게까지 과격한 불편함(?)을 보여주고자 애쓰시는 감독님의 의도가 솔직히 뻔해 보였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면 관심도 갖지 않을 우리에게는 그러나 절실히 필요한 처방이라고 생각하였다. 중간중간 배우의 입에서 수치로 제시되는 대한민국 사각지대의 실태라는 것은 웃펐으나, 감독님의 의도만큼 꽤 교훈적이었다. 감독님이 관객에게 그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했던 나는 그 이상으로 영화가 죽여주게 재미있었고 불편하였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 볼 수조차 없고, 설령 본다 한들 일말의 감정도 일지 않을 인권의 사각지대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어떤 계기로든 의식을 세우고 촉수를 세우면 우리는 ‘사각지대’를 볼 수 있다. 아니, 억지로라도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꽤 불편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야 우리는 절절히 깨닫게 될 것이다. 아, 거기에도 '우리들'이 그렇게 있었구나,라고.
우릴 비웃지 마세요. 우린 그저 시간이 흘러 나이 먹었을 뿐이랍니다.
우린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피부색이 좀 다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랍니다.
우릴 가엾게 여기지 말아 주세요. 우리도 여자고, 우리도 남자랍니다.
우릴 놀리지 마세요. 우린 몸이 조금 불편할 뿐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