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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18. 2018

우원재는 영리했다.

쇼미더머니 777 말고 쇼미더머니 6 이야기 하나

2017년의 어느 날,

스눕피가 쓴 글을 여기 다시 옮김.


  대학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며 절절하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곧 컨셉이 전부라는 것. 포지셔닝이니 브랜드 정체성이니 하는 것들도 사실 ‘컨셉-질’의 다른 말이 아니던가.

올해 초, 신세계 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 이런 해시태그와 함께. #컨셉에살고컨셉에죽는다, 요즈음 신세계와 이마트가 벌이는 주요 사업들을 죽 둘러보면 그의 컨셉에 대한 철학 내지는 강박을 느낄 수가 있는데, 현대카드처럼 신세계도 이제 독특하고 고유한 그룹의 색깔을 굳혀나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컨셉이 뭐길래.


  오늘날 잘 나가는 유명인의 대부분이 오로지 잘 만들어놓은 컨셉 하나로 밥 벌어먹고 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실 그것을 두고 구태여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과연 그들이 일궈낸 성공적 제스처의 요체이기 때문이고, 어떻게든 자기만의 컨셉을 잘 구축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알맹이가 가득한 이유 있는 컨셉의 경우, 그것은 그 자체로 칭송해야 마땅할 것이다.

  “쟤도 까놓고 보면 별 거 없어.”
이 시대의 숱한 패잔병들이 유명인을 상대로 심심찮게 내뱉곤 하는 이 관습의 대사는 짠하다. 하지만 공감하지 아니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이 대사는 얼떨결에 대중 일반에 먹혀든, 겉만 그럴싸한 컨셉 하나로 승자의 반열에 올라간 듯 착각하는 몇몇 못된 유명인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그들을 상대로 한 지질하지만 가장 적절한 나름의 공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기야 이렇게 빈정댄다고 해서 변할 것은 없지만 말이다(하지만 가만히 있자니 배가 아픈 걸 어떡하나).

  올해 방영한 쇼미더머니6의 인기는 뜨거웠다. 뭐, 너무 새삼스러워서 ‘뜨겁다’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힙합의 인기는 여전히, 되게 뜨거웠다. 누군가 내게 쇼미더머니6의 최대 수혜자를 꼽아보라는 질문을 제발 좀 던져준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래퍼 ‘우원재’를 꼽을 것이다. 그는 시종일관 어두컴컴했고, 무더운 여름의 기세가 무색하게 비니를 뒤집어썼으며, 감정 표현에 서툴렀고, 인터뷰를 할 때면 도대체 뭔 말을 하는 건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웅얼거렸다. 하지만 그가 입 밖으로 대충 무슨 말이든 뱉어내기만 하면 그것은 곧 뭇 힙찔이들이 열광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알약 두 봉지’와 ‘산타 할아버지’, 실상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그 단어들이 그토록 주목받으며 나이 60을 넘긴 우리 아버지의 귓속으로까지 꽂혀 들어가게 된 것을 나는 랩 서바이벌 예능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리하게 설정한 그의 컨셉 때문이라고 본다(쇼미더머니를 보라,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지닌 이야기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고 보면 그는 우리에게 일종 성공의 교훈 하나를 가르쳐 준 셈이다(모든 교훈은 특수하지만, 적용은 보편적이니 분야를 막론하고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머리를 박박 밀거나 스냅백을 뒤집어쓴다면 과감하게 ‘비니’를 써볼 것, 모두가 자신이 속한 크루나 소속사의 이름을 대며 시끄럽게 떠들어댄다면 대학 이름 정도만 말하고 쉿, 과묵해 볼 것. 모두가 돈 얘기와 여자 얘기를 하며 밉살스러움을 연출한다면 평소 가지고 있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글로 써서 입으로 표현해 볼 것.
  쇼미더머니 6가 종영하고 우원재가 박재범이 이끄는 힙합 기획사 AOMG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금 놀랐다. 분위기가 좀 안 맞을 것 같은데,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친김에 그의 최근 모습을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우원재
그는 이제 비니를 벗고, 활짝 웃고, 밝은 옷을 입고, 손목에는 로렉스 시계를 찼더라. 반짝반짝. 오, 그는 영리했다.


추가) 컨셉으로 흥한 미국 래퍼 릭 로스(Rick Ross)는 고도 비만이다. 하지만 고도 비만은 그의 반쪽만을 설명할 뿐이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뱃살과 가슴살을 자랑하며 자신을 Drug Dealer(약장수) 내지는 Boss(두목)라는 컨셉으로 규정하곤 미국 힙합 씬의 거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전직은 놀랍게도 교도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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