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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May 25. 2019

버질 아블로가 한국에서 디제잉한다길래 다녀왔습니다.

믹스맥 코리아 3주년 기념 버질 아블로의 디제잉 공연


믹스맥 매거진 코리아의 3주년 기념 공연에 다녀왔다. 아, 바로 어제였다. 오프 화이트의 수장이자 루이비통의 아트 디렉터 '버질 아블로'가 내한하여 디제잉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데 금요일 밤에 딱히 가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세계 패션 시장을 뒤흔드는 아이콘의 용안을 또 언제 볼 일이 있겠느냔 생각이 컸고, 오랜만에 사람 구경도 세차게 한번 해보자는 심산으로 다녀온 것이었다.


공연 장소는 얼마 전 퍼렐 윌리엄스X샤넬의 론칭 파티가 이루어진 성수동 대림창고였고, 티켓 가격은 4만 4천 원이었다. 아, 물론 버질 아블로의 단독 공연은 아니었고, 그는 새벽 1시 30분부터 3시까지의 1시간 30분 만을 책임지기로 되어 있었다. 그의 앞, 뒤로 더없이 멋진 이름을 한 여러 일렉트로닉 기반의 아티스트들이 포진되어 있었는데, 솔직히 말해 '일렉트로닉' 음악에 문외한인 나는 구글을 통해 그들의 음악적 배경과 공연 영상을 살펴보아도 도통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들의 공연을 과감히 재끼기로 한 것이다.


나와 불알친구는 버질 아블로의 공연 시간보다 조금 일찍 성수동 대림 창고 앞에 도착했다.



한껏 멋을 부린, 장롱 속에서 가장 멋진 옷을 꺼내 입은, 오늘이 마치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담배를 미친 듯이 빨아 재끼고 그것의 연기를 연신 무자비하게 뱉어내는 멋쟁이들이 대림창고 앞에 도열해있었다. 나처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감히 구매할 용기도 내지 못하는 값비싼 스트리트 웨어와 명품 브랜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감은 사람들이 자주 보였고, 람보르기니와 벤테이가 등의 슈퍼카들이 몇 종 보였다. 스트리트 웨어의 대부님을 영접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거개의 스타일링이 '스트리트 패션'에 초점을 두고 있었는데, 평소 남들과는 다른 개성 있는 스타일을 지향하며 '스트리트 패션'의 감성에 휩싸인 사람들을 한 장소에 몰아넣으니 도리어 '몰개성'이 연출되는 역설적이고 재미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아, 역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사람 구경이라고 생각한다).


12시 55분경, 검은색 벤츠 S550 차량이 등장하면서 나름 규칙을 가지고 도열해있던 수많은 인파가 헝클어지며 도로의 양 옆으로 미친 듯이 밀려 나왔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경호원들과 관계자들이 열심히 길을 만들고, 갖은 인상을 다 쓰며 무전기로 소통하는 걸 보니 '버질 아블로' 선생님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도 질세라 앞으로 튀어나갔다.


"야, 저거 버질 아블로네, 저거 탔네. 허 넘버잖아."


사람들이 모이면 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목을 다 가져가는 법이다. 알 수 없이 큰 목소리로 버질 아블로의 등장을 자신 있게 알리던 한 남자의 소란과 함께 S550이 멈춰 섰고 사람들이 차를 감쌌다. 경호원들은 애써 화를 가라앉히며 몸소 '모세의 기적'을 재현하려는 듯이 사람들을 양쪽으로 갈랐다.


곧이어 버질 아블로가 내렸다.

피부가 어두웠고, 키는 컸고, 눈알은 하얀색이었다.

다른 형용은 입만 아플 뿐이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나를 웃기게 하였다.


"와, 완전 마이클 조던인데?"


5월 25일 12시 56분, 마이클 조던의 등장


수많은 인파를 뚫고 마이클 조던이, 아니, 버질 아블로가 공연장 안으로 입성했고, 잠시 후 그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음, 나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렉트로닉 뮤직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가 공연 내내 틀었던 음악의 장르나 스타일을 잘 설명할 힘이 없다. 다만 그는 간간이 힙합 음악을 틀어주면서 '힙찔이'들을 기어코 환장케 했는데, Cardi B의 'Bodak Yellow', Sheck Wes의 'Mo Bamba' 그리고 Travis Scott의 'Sicko Mode'가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술이나 마약의 도움 없이도 사람들이 이렇게나 미칠 수가 있구나 싶었다. 확실히 '스트리트 웨어'에 관심이 많고 '버질 아블로'라는 블랙 아이콘(?)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평소 힙합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듯했고, 이번 공연에서도 힙합 음악을 많이들 기대했던 것 같다(더 많이 틀어주지). 사람들이 가사를 전부 따라 부르는데, 그 실력이 음악 한두 번 살짝 들어보고 대충 웅얼거리는 모양이라기보다는 나처럼 힙합 음악을 귀에 달고 사는 모양인지 아주 디테일한 음악의 추임새까지 전부 따라 하며 악을 썼다(한국인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영어를 잘했지?). 그때 나는 문득 묘한 동질감이 일면서 기분이 쾌해졌었다.




예정된 시간이 흐르고, 오프화이트X나이키 신발에 자신의 사인을 즉흥적으로 박아 넣고 관객석을 향해 두 차례 던져주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그의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아쉬울 것도 없고, 더 바랄 것도 없는 공연이었다. 다시 말해 44,000원의 티켓 값어치를 충분히 해낸 공연이었다. 나는 그저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했고, 어둠 속에서 잘 분간이 되지 않는 그의 검은 얼굴을 찾느라 정신없이 눈알을 돌려야 해서 지루하거나 피곤하지도 않았다. 또 황홀경에 빠져서 무아지경으로 춤에 몰입하는 어떤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이 세상은 아직까지 꽤나 살만한 곳이라는 기분 좋은 확신까지도 들었다.


어쩌다 보니 등장부터 퇴장까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치 사생팬처럼 버질 아블로를 촬영하게 되었는데, 혹시 공연에 가시지 못한 분들께서는 함께 업로드한 관련 사진과 영상 하나를 보면서 현장의 기운을 대신 느낄 수 있는 기회로 삼으셨으면 한다(관련 영상을 더 많이 올리고 싶지만,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많이 등장하여 올리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피부는 검었고, 키는 컸다. 다른 할 말은 없다.


아, 무엇보다 잘생겼다.


5월 25일 3시 21분, 마이클 조던의 퇴장


*프런트 이미지 출처: Glossi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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