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Jun 11. 2019

인하대학교에 빚진 인생

인하공업 전문대학에도 약간은 빚졌습니다.

그때가 벌써 언제였나? 마치 정복자처럼 격앙된 기운으로 밤마다 술을 퍼마시던 때가 있었다.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단히 증명하려고 어떻게든 축배를 들던 스무 살의 언저리였다. 술 마실 일이 없으면 술 마실 일을 만들었고, 술 마실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술 마실 장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 동네의 랜드마크 인하대학교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하대학교 후문이 있었다.

내가 맨 처음 술을 입에 댄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을 만큼 무지하게 추워 까무러칠 것 같던 2006년 겨울의 어느 날이었고, 지금은 위치도 가물가물한 인하대학교 후문의 한 고깃집이었다.

속된 말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사내놈 대여섯 명이 갖은 멋을 다 부리며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물컵 속에 소주를 콸콸콸 부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사실 나는 그날 소주를 난생처음으로 마신 셈이었는데, ‘첫 경험’이라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키기 싫어 애써 정신을 붙들고 붙들고 또 붙들며 억지로 들이켰다. 아, 지독하게 그리운 시절이다.

나는 인하대학교 주변에서 살았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시험 기간만 되면 나는 인하대학교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인하대학교에 다니던 군대 후임의 학생증을 빌리기도 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은 날에는 꽤나 태연한 얼굴을 하고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잠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인하대학교 학생인지 아닌지를 구태여 확인할 방법도, 이유도 없었겠거니와 무엇보다 사람들이 내 얼굴에서 인천 앞바다의 짠내를 잔뜩 풍기는 세상에서 가장 비릿한 표정을 보았기 때문에 조용히 눈을 감아주었던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나는 시간이 나면 틈나는 대로 인하대학교와 인하공업 전문대학 캠퍼스에 들러 운동을 하고, 대학생 구경을 하고, ‘시팔’ 소리를 내뱉으며 잘 풀리지 않는 현실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배경으로 활용했다(모교도 마찬가지였지만, 내게 대학 캠퍼스는 단 한 번도 낭만의 이름이었던 일이 없다).

내가 스무 살이던 2009년 여름의 한 새벽, 여느 때와 같이 인하대학교 캠퍼스 내 벤치에서 친구들과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옆 벤치의 이름 모를 칙칙한 남정네들 여럿이 매우 신나서 노래를 하나 크게 틀었다. 투애니원의 ‘I DON’T CARE’였다.
아! 아이돌을 끔찍이 싫어하던 나와 내 친구들은 그 노래가 너무나 듣기 거북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집을 향해 걸어갔는데, 아, 이 늦은 밤에 문득 그날의 추억이 밀려 들어와 이런 잡글을 일필휘지로 써 갈기고 있다.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 이십 대의 많은 부분을 인하대에 빚졌다는 걸 안다. 음, 잊지 말아야지.


인하대(인하공전),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알 즐겼다면 겨얼코 낭비가 아니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