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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Feb 15. 2020

포털 사이트와 사전이 있는 한 인생이 따분하진 않겠지?

모르다가도 별안간 알게 된다는 그 가능성이 좋다.



나는 구글 크롬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한다.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구글 크롬의 첫 페이지에는 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가 접속되어 있다. 컴퓨터를 가지고 놀다가 문득 떠오르거나 눈 앞을 스치는 어떤 단어를 두고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면 그것을 바로 검색해보기 위함이다.



유튜브만큼이나 재밌는 곳입니다. 가끔은 제 말도 믿어주세요.



이러한 버릇을 들인 건 대충 10년 정도 된 것 같은데(군대에서는 한컴 사전을 이용했다), 어떤 단어든 검색할 때마다 그것에 대해 대충 알고 있던 경우가 하도 많았기 때문에, 이토록 순 엉터리 같은 한국말 지식으로 평생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온 건지 스스로 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흑연 가루와 점토를 섞어 개어, 가늘고 길게 만들어서 굳힌 심을, 가는 나뭇대에 박은 것




위 단어 조합은 내가 중학교 때 사용하던 두산동아 국어사전에 담긴 ‘연필’에 대한 정의이다. 돌아보면 중학교 때부터 나는 ‘국어사전’을 꽤 재미있는 놀이 도구로 활용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지성에서 영성으로 인생의 방향을 튼 대한민국의 ‘국어’ 천재 이어령 선생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내가 여행지의 안내 표지판 속 문장 하나하나를 분해해 비문을 찾아내고는 김국진-스러운 함박웃음을 날리며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유시민 선생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좌)의 지성과 (우)의 인성을 잘 섞어서 제게 선물해주시겠어요? 얼굴은 괜찮구요.



늘 같이 붙어 앉던 단짝 친구 하나와 나는 국어사전에서 임의로 단어 하나를 골라 그것의 정의를 찾아 외우고는 학급 친구들에게 깐족대곤 했던 것이다. 뭐가 그리 재밌는 일이라고 쿡쿡대며.




“야, 혹시 내 흑연 가루와 점토를 섞어 개어 가늘고 길게 만들어서 굳힌 심을 가는 나뭇대에 박은 것 봤어?”

“그게 뭔데?”

“국어사전 찾아봐!”

“뭐래……”




비슷한 맥락에서 Urban Dictionary와 Google이 없으면 내 인생은 꽤나 우울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미국 뉴욕 브롱스 출신의 래퍼 A Boogie Wit Da Hoodie의 새 앨범 <Artist 2.0>가 발매되었는데, 미국 힙합 앨범이 하나 세상에 튀어나오면 그것의 모든 트랙을 충분히 소화하기 위해서 가사를 꼼꼼히 뜯어보는 내게 '어반 딕셔너리'와 '구글 검색창'이 없는 세상이란 마치 김치 없는 라면을 억지로 삼켜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위장에게 죄송해 죽을 지경인 한국인의 절망과 닮아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A Boogie Wit Da Hoodie <Artist 2.0>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해보자면, A Boogie Wit Da Hoodie의 앨범 <Artist 2.0>의 4번 트랙 'Might Not Give Up'의 첫 번째 벌스는 "Eliantte got me iced out, yeah, yeah"로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Elliantte가 의미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미국 래퍼들을 위해 커스터마이징 주얼리를 제작해주는 인물의 이름이다.



Eliantte의 주얼리를 착용한 래퍼 Fetty Wap (이미지 출처: Eliantte)



미국 힙합 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Eliantte&Co의 Eliantte, ICEBOX, IF&Co의 Ben Baller벤 볼러 등의 주얼리 제작 업체(인물)들의 이름이 익숙할 텐데, 나처럼 쓸데없는 정보에 집착하는 인물은 역시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관련 가사가 튀어나오면 구글링을 통해 관련 업체(인물)들의 동향 등을 오랜만에 살펴보며 한참이나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정보일지라도 모르던 걸 뜻밖에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쾌감은 늘 짜릿하기 때문이다.



모르다가도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이구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Eliantte'라는 미국의 주얼리 메이커와 그의 동향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효용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적어도 나는 'Eliantte'를 '모르고' 살던 사람에서 'Eliantte'를 '아는'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이다(이런 걸로 뿌듯함을 느끼면 변태인 건가?).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걸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일이 얼마나 불안할까?라는 생각, 그들이 삶의 매 순간 느낄 앎에 대한 어떤 강박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달까. 주변에 그런 사람들 꼭 있다. 뭐든지 다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무언가를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되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모르다가도 별안간 알게 될 수도 있는 게 인생인데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인생을 이야기하며 '알다가도 모르겠다'라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자주 쓰는데 인생이란 사실 '모르다가도 알겠다'라는 표현에 더 가까운 개념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 그렇기에 인생의 가능성이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모르다가도 알겠다'라는 문장의 비유란 꽤 괜찮은 것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




모르는 건 약도 아니고 독도 아닐까?




모르는 게 약도 아니고 아는 게 독도 아니지만(아니라고 믿지만), 많이 안다고 뻗댈 필요도 없고 적게 안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숫자를 비교하여 셈해보면 후자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걸 금방 깨닫는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듯하지만, 실상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건 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것들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내가 즐겨 듣는 보스 블루투스 스피커의 작동 원리도, 매일 손에 쥐고 다니는 아이폰의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원리도, 내가 중학교 때 산 Rakim의 앨범 <The 18th Letter>의 CD가 생산된 공장이 어딘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여러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모르다가도 알게 되는 그 별안간의 가능성을 좇아가는 삶도 꽤 괜찮지 않을까 싶다. 부지런히 포털 사이트와 온라인 사전의 검색창을 연신 두드리면서.


가끔은 밖에 나가 놀며 햇빛도 쐬어야겠지만.


(이미지 출처: NBC 시트콤 The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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