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비단 술자리만은 아니지만, 인생은 결국 눈치 게임이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토크쇼를 여럿이 함께 모여 봐야만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찾아온다.
화면 속의 외국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틈만 나면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던졌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솔직히 그들이 던진 유머의 정체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마치 그들의 농담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처럼 실실 웃곤 했다는 걸 고백한다. 주변 사람들이 웃길래 그저 따라 웃었던 것뿐인데.
혹여나 옆에 앉은 눈치 없는 남자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얼굴을 한 채 귓속말로 대뜸 무슨 내용이었길래 저리들 웃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어오기라도 하면 내가 되게 옹색해질까 봐 크게 웃지는 못하고 '적당히' 웃어야만 했던 나의 비겁한 행동은 곱절로 반성한다.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미술 전시회에는 종종 들르곤 한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남자로 보이고 싶은 시답잖은 강박이랄까.
나는 유명 작가들의 그리 대단하다는 작품 속으로 어설프게나마 뛰어드는 데에는 매번 성공하지만, 작품 안에서 재미있게 놀고 감동을 받는 일에는 매번 실패한다. 예컨대 사람들이 주저앉아 눈물을 한 바가지씩 흘리곤 했다는 어떤 유명 작가의 역사적인 작품 앞에서 나는 하품을 한 바가지하며 스마트폰을 연신 만지작거리곤 했던 것이다. 한 작품에 발을 어색하게 담그고 있다가는 눈치를 보다가 빼고, 다른 작품에 또다시 발을 심심하게 담갔다가는 빼기를 반복하는 셈인 것이다. 그럴 거면 미술관엔 왜 가는 건지.
하지만 그 순간 주변을 돌아보면 어김없이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듯 손에 쥔 메모장에 일필휘지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사람이나 그림으로부터 어지간한 충격이라도 받은 듯 턱에 손을 대고 심각한 표정으로 작품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이 떡하니 서있는 법이어서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떼창을 유도하며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어떤 외국인 가수의 내한 공연장에서는 나만 빼고 주변 사람들이 전부 해당 노래의 가사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머쓱하였고,
연병장 앞으로 튀어나와 열심히 시범을 보이는 군대 조교의 구분 동작을 나는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옆에 앉아있는 전우들은 어쩌자고 하나도 빠짐없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짜증 나거나 민망하였으며,
"한 번 설명할 때 좀 알아들어라, 나는 두 번 설명 안 한다" 라며 으름장을 놓는, 쓸데없는 윽박이 매력적이었던 까칠한 선생님을 바라보며 '무엇이든 한 번에 이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라며 속으로 빈정대곤 했으나, 때마침 주변을 돌아보면 단 한 번의 불친절한 설명을 어쩌자고 단번에 친절하게 알아들으며 실실 대는 녀석들이 꼭 존재하는 법이어서 고지식하고 멍청한 나를 짜증 나거나 괴롭게 했다.
왜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잘 아는데,
왜 나는 잘 못하고 잘 모를까.
아니, 왜 나만 잘 못하고 잘 모를까?
인생이 비단 술자리만은 아니지만
인생은 결국 눈치 게임이다.
흔들림 없이 직진하는 자가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