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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08. 2019

20년 차 힙찔이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

(11) 10/8(화), 힙합 음악의 인기, 이유가 뭘까요?

2019년 10월 8일 화요일, 11번째 화요 힙합 음악 추천을 시작합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추천곡을 먼저 깔끔하게 박아놓고 가겠습니다.


오늘의 첫 번째 추천곡은 미국의 슈퍼 랩 트리오 Migos의 멤버 TakeOff의 첫 솔로 정규 앨범 <The Last Rocket>의 수록곡 'She Gon Wink'이고요, 두 번째 추천곡은 Migos의 또 다른 멤버 Offset의 첫 솔로 정규 앨범 <Father of 4>의 수록곡 'Lick'입니다. 지금 플레이리스트에 먼저 얹어 놓으시죠?


The Last Rockey by TakeOff (출처: pitchfork.com)


Father of 4 by OffSet (출처: Genius.com)


스물의 언저리, 대학 중앙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려본 책의 제목은 <일상적인 삶>이었습니다. 작가의 이름은 '장 그르니에'였지요.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절대 스승이기도 한 그는 책에서 일상적인 행동 몇 가지를 추려 그것의 본질적인 의미를 파헤칩니다.

'인간은 왜 담배를 피우는가?', '포도주란 무엇이고, 왜 마시는가?' 등에 대해 역사와 철학 등을 동원해 파고드는 꽤나 피곤한 책이었어요. 하지만 적당한 분량과 흥미로운 관점 때문에 새우깡처럼 자꾸만 손이 가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프링글스처럼 한 번 열면 멈출 수가 없는 책이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바로 사 버렸죠, 뭐.


장 그르니에(좌)와 알베르 카뮈(우) (출처: France Culture)


뜬금없지만 장 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의 한 챕터에 '힙합 음악'이라는 주제가 들어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봤습니다. 끔찍한 상상이죠. 힙합이라는 문화의 시대적 변혁을 구구절절 읊고 철학적 고찰을 집어넣어 조잘조잘 떠든다고 상상해보세요. 아마 많은 현대인들은 아연한 표정을 한 채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왜 듣긴 왜 들어!? 신나고 느낌 있으니까 듣지! 저 진지한 해석 좀 보소;;;"


저의 취미는 사람 관찰입니다. 제정신은 아닌 거죠. 가끔 운전을 하다가 정차 상황에서 차 문을 내리고 2040 운전자가 무슨 음악을 듣는지 귀를 쫑긋 세워 무심한 태도로 엿듣거나(상대방이 창문을 열어놓았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제 청력이 그렇게 좋진 않아요), 지하철이나 버스에 올라타 유튜브 영상에 집중하고 있는 2040 탑승객의 스마트폰 화면을 힐끗힐끗 한 번씩 쳐다봅니다(카톡을 훔쳐보진 않아요).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아니, 망치를 들고 다니면 못만 보인다고, '쇼미더머니', '딩고'류의 영상 또는 AOMG류의 음악이 제 눈과 귀에 자주 걸리더군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영업마케팅적 수사는 허튼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체험 삶의 현장'이 아니라 '체험 힙합의 현장'도 그것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뭔 말인지).


빈지노의 'Dali, Van, Picasso'가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던 그날의 충격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이 노래가?' 그야말로 의아했던 겁니다. 힙합 씬이 '아이돌' 내지는 '아이콘'을 낳을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에 충격을 받고 집을 향해 걸어가던 거리에서 거짓 하나 보탬 없이 부동자세를 취했습니다. 금세 추워져서 다시 걸었지만요.

쇼미더머니의 음원이 차트의 선두권에 줄지어 엎치락뒤치락하고, 길거리의 어느 모퉁이를 돌아도 '힙합 음악'이 크게 터져 나오는 오늘의 모습이 더는 새롭지가 않습니다. 힙합은 영락없이 대중가요가 된 것입니다.


Dali, Van, Picasso (출처: Ballplaya)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요? 요즘 힙합 왜 이렇게 인기가 좋은 걸까요? 한국 음악 시장의 트렌드는 미국의 음악 시장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재 미국 음악 시장을 뒤흔드는 힙합 장르의 약진이 여세를 몰아 한국에 기어들어와 퍼진 걸까요? 네, 분명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드는군요. 다른 이유가 뭐 없을까요?


복잡하고 어려우며 잘난 '척'하는 이야기들, 예전에는 스마트하고 섹시하다며 각광받았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골치 아프고 싫습니다. 요즘 힙합은 그러한 삶의 태도를 질색하지요. 그래, 다 알겠고 잘나셨는데요, 그걸로는 돈을 못 버는 걸요. 닥치고 '돈'을 좀 보여달란 말입니다! 세상은 날로 좋아지고 우린 사야 할 게 많다고요.

치기 어린 꿈은 당장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이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좀 편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요즘 래퍼들은 성공적으로 실천하며 증명합니다. 툭하면 재수 없는 표정을 하고 돈뭉치와 좋은 차를 보여주며 뻐기기도 하고요. 겸손의 미덕 따위 사실 개나 줘 버린 지 오래인 게 솔직한 현실이잖아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겸손입니까. 이럴 때일수록 더 떠벌려야죠.

래퍼 빈지노의 노래 가사처럼 '성실하기만을 바라는' 유통기한 지난 시루떡처럼 퍽퍽한 사람들, 5일 내내 울리는 모닝콜을 죽어라 저주하며 도축장에 끌려가는 듯한 표정으로 대중교통에 몸을 싣는 오밤중의 선글라스처럼 한 치 앞이 컴컴한 사람들 틈에서 쿨하고 심플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방방 뛰는 그야말로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래퍼들과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는 요즘 힙합 음악은 일종의 '대리 만족'의 감각을 일깨우는 듯합니다.


글쟁이들이 자주 던지는 식상한 말이 하나 있죠.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쉽게 써라!'


"글이 복잡하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자기 색깔을 살려야죠. 고치지 마세요." (출처: 교보문고)


개인적으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말입니다, 글 장인들이 말하는 덜어내고 덜어내서 '완전한 상태'에 다다른 그 심플한 글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르브론 제임스가 힘 빼고 슈팅하랬다고 진짜 힘 빼고 슈팅하면 당신의 손 끝을 떠난 농구공이 그리는 석연치 않은 포물선에 적잖이 당황하며 공연히 뒤통수를 긁게 될 겁니다. 무엇이든 상황이 중요한 거죠. 왜 글을 쉽게 쓰라고만 합니까? 하지만 요즘 힙합의 맥락에 적용시키면 이보다 괜찮은 표현이 또 있을까 싶어요.


'초등학생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게, 중학생이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노래를 만들어라'


음악의 기능적인 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요즘의 우리에겐 무언가 '생각하게' 만드는 노래보다는 복잡한 생각을 '잊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덜어주는' 음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요즘 힙합 음악이 있습니다.

'무의미의 의미'란 말이 있죠. 요즘 시대에는 행동과 사고의 이유를 잘 묻지 않습니다. 묻는 이는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답해야 하는 이는 불편한 일이라고 말하죠. 그런 걸 왜 하냐고, 그런 걸 왜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아무 의미 없다고 '그냥'이라고 얘기해도 괜찮은 시대가 된 겁니다. 몇 년 전까지는 명분만을 찾는 시대가 짜증 난다며 다들 툴툴거렸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아무 이유 없는 무의미한(무의미하다고 치부되는)것들이 설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온전히 제 생각입니다.


DRIP & Gunna (출처: Kulture Hub)


"래퍼들이 Drip Drip Drip 그러던데 그건 왜 하는 거야?"

"어, 그건 말이야, 설명하려면 좀 긴데, 잠자코 잘 들어봐. 사실 그거 그냥 하는 거야."


미국의 랩스타 Quavo의 인상적인 인터뷰 장면이 하나 생각납니다. 스타워즈의 주인공 중 하나인 YODA의 형상을 한 반짝이는 주얼리를 카메라 앞에서 자랑하던 래퍼 Quavo에게 인터뷰어가 영화 스타워즈를 좋아하는지, 혹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자 Quavo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아뇨, 뭐 그냥 한 거죠."


지금은 Just For Fun의 자세가 힙합 씬을 온통 주무르고 있지 않나 싶네요. 그저 즐기자는 거죠. 그리고 그러한 삶의 자세가 노랫말로 바뀌어 힙합 비트와 멜로디를 경유해 리스너의 귓속에 꽂힐 때 그것이 그들의 몸과 마음에 전달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음악은 하나의 교감이니까요.

물론 모든 래퍼들이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는 막돼먹은 궤변을 늘어놓으려는 게 아닙니다(그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한숨도 많이 내쉴 것이며 담배도 계속 축내며 하나의 곡을 가까스로 완성시키는 것이겠죠, 누가 그걸 부정하겠습니까). 다만 저는 크게 크게 흘러가는 요즘 힙합 음악 트렌드와 그것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경향성이라는 물줄기를 조금 멀리 떨어져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양상이 두드러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즉각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세대적 배경 그리고 놀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해진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다종 다양한 페스티벌들. 그곳에서 방방 뛰며 놀기에 적합한 단순한 요즘 힙합 음악이 시대의 주류로 기능하는 건 어찌 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음악의 비주얼적 면모와 감각적인 사운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으니까요.


Lil Uzi Vert at Coachella festival 2017 (출처: The New York Times)


오늘의 추천 노래 두 곡을 설명하려고 이렇게나 길게 돌아왔습니다.


두 곡 모두 Migos라는 현역 최고의 랩 트리오의 두 멤버가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통해 발표한 노래들입니다.

가난함을 저 멀리 차 버리고 부유한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끽하는 모습을 Migos 특유의 '애드리브'를 섞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Migos는 노래의 테마 설정을 영리하게 잘합니다. 다만 가사는 언제나 유치하고 별 볼 일 없죠.


Migos의 세 멤버는 힙합 정신을 가장 스타일리시하고 맛깔나게 표현해내는 데 영특합니다. 예컨대 다른 평범한 래퍼들을 피넛버터 젤리 샌드위치에 비유한다면 Migos의 세 멤버는 누텔라 크림을 듬뿍 발라 얇게 썬 바나나와 딸기를 올린 토스트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뭔 말인지 이해하신 분 대단하십니다, 저도 뭔 말인지 모르거든요, 글을 쉽게 좀 써라!).



Came from nothin' (Nothin'), now we on your favorite tune (Your tune)

바닥에서 시작해 이젠 너희들의 최애 노래 리스트에 올랐지


I can turn my house to a bank (Whoa)
우리 집을 은행으로 바꿀게.

Watch me fill the room (Fill it)
돈으로 방 채우는 거, 잘 보라고.



TakeOff - 'She Gon Wink'





(Hey) I took a couple of my dawgs on a lick*
친구들이랑 약 팔았었지.
(*사실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돈을 버는 일련의 행위를 lick이라고 합니다.)

Do or die, gotta survive, pay the rent (Survive)
뒈질 각오로 살아남아야 했어. 집세도 내려면.

I was so broke that I could cry, I was sick (Broke)
완전 그지여서 울고 싶었어. 지쳤었지.

Born in the wild, so many trials, I ain't quit
팍팍하게 태어나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

Dirtied the money, I let it drown, watch it cleanse (Cleanse)
더럽게 번 돈 싹 씻어버렸지.



OffSet - 'Lick'



제가 앞서 주저리 언급한 요즘 힙합 음악의 경향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가 'Migos'라고 생각해서 위 두 곡을 오늘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곡으로 골라봤습니다.


언젠가 대한민국의 래퍼 Dok2는 어떤 노래를 통해 '돈 얘기가 아니면 닥쳐 말 걸지도 마'라고 했습니다. 정말 말을 걸면 안 되는 걸까요? Migos의 세 멤버가 써 내려가는 가사의 일관된 주제 또한 사실 '돈 얘기가 아니면 닥쳐 말 걸지도 마'에 가장 가깝습니다. 돈 자랑, 아주 식상하죠.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의 신묘한 악기와도 같습니다. 오토튠을 머금은 그들의 쨍쨍한 목소리는 비트를 타고 리스너의 신경을 잔뜩 자극합니다. 기분이 고양되는 걸 스스로 체감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이라니까요.


사실 앞선 설명은 죄다 구라였습니다. 힙합이 왜 인기가 있느냐고요? 힙합 음악을 왜 그렇게들 좋아하냐고요? 말로 이걸 설명해내는 건 제겐 형벌이 아닐까 싶네요. 오늘의 추천곡을 크게 한 번 들어보세요.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합니까? 젠장!


말랑말랑한 브런치의 글 세상에서 이토록 삐딱하고 영양가 없는 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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