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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20. 2018

책장에 놓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보다가 문득.

나의 인생 선배, 인생 교수님, 인생 선생님, 인생 멘토를 꼽으라면?

  중등학교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르면 늘 세계문학 코너 앞에 서서 작가의 이름과 책 제목을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그날의 내 기분이나 상황과 어울리는 제목의 책을 하나 고르고는 빈자리를 찾아 앉아 그것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카뮈가 장 그르니에의 <섬>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동! 세계문학은 분명 시간의 세례를 받은 고전이고,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창이며, 책은 도끼라는 누구의 말마따나 우리 마음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이지만, 그러한 수식들이 내가 세계문학을 사랑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세계문학을 아끼는 이유는 그것들이 늘 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의 중앙 도서관 맨 아래층엔 문학 코너가 있었다. 친구들과 건수를 찾아서 하릴없이 싸돌아다니던 프레시맨 시절을 제외한다면, 대학시절의 나는 점심시간만 되면 늘 그곳으로 뛰어가곤 했다. 캠퍼스 안에서 점심 한 끼를 생략하고 다른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고의 보람은 문학 읽기로부터 얻는 충일감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적당히 한심한 선택이었으나, 별로 후회하진 않는다. 책장과 책장의 사이에 서서 등을 기대어 세계문학 한 권을 집어 들고 그것에 집중하다가 잠깐씩 주위를 둘러봤을 때, 양 끝 책상 주변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대기업 인적성 검사 문제집이나 공무원 기출문제집을 미친 듯이 풀어 재끼느라 붉게 달아오른 동문의 얼굴뿐이었다. 그들은 안정적인 직업에, 나는 쓸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문학 읽기에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의 점심시간을 바친 것이었다. 나나 그들이나 그저 행복을 찾았을 뿐이었다는 것이 내가 자기 비하와 남 깎아내리기를 동반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지만.


  하여튼 내가 좋아하는 서점과 도서관의 바로 그 자리엔 오늘도, 내일도 세계문학이 굳건히 버티고 서 있을 것이다.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하는 그들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건 결국 우리의 몫이다. 그들은 늘 제자리에 있으니까.

  내가 존경하는 김훈 작가는 언젠가 문학을 두고 하찮은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김훈 작가를 존경하고 아끼지만, 문학이 하찮은 것이라는 말엔 별로 동의하고 싶지가 않다. 당신의 말씀처럼 문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내친김에 하찮아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세계 문학과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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