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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25. 2018

나는 오늘도 운을 믿는다.

운칠기삼? 운명론? 인생이 식빵처럼 너무 팍팍해서 그래!

  나는 운을 믿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 운의 연속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알고 있다. 개인의 노력과 의지야말로 사람의 인생을 움직이는 실제적인 동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최대치의 노력을 기울여 불굴의 의지로 덤벼든 일이 끝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그 절망감과 좌절감은 어찌할 것인가.


  20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당시 여자 친구에게 난 당당하게 일렀다.

“나는 운명론자야. 무서운 얘기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뭐 물론 노력하면 되겠지, 근데 결과는 대충 정해져 있지 않나 싶기도 해. 왠지 우주가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 같아. 어떤 체계를 가지고”

그때 난 꽤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세상을 다 아는 원로처럼 떠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당시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 책의 의견에 내 생각 조금을 더해 심각한 척 던졌으리라. 여자 친구는 “소름 돋아!” 라며 끄덕여주었는데, 연기를 꽤 잘하는 수더분하고 착한 친구였기에 나의 개똥 같은 말에도 그렇게나 동의해주었던 것이다(정말이지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의 그 개똥 같은 생각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좋은 생각으로 무언가를 끝없이 바라고 원한다면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거나 긍정적인 입버릇이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식의 유익한(?) 사고관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내가 뭐라고 감히 그런 성공철학을 거부하고 코웃음 칠 수 있겠는가. 더구나 한때는 나도 그러한 정신과 태도로 온통 무장하여 세상을 대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되는 일 하나 없어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내게 허용된 ‘긍정’의 기운을 다시 한번 힘껏 쥐어짠다. 그렇지만 금세 지쳐버리고 만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이렇게 좋게 생각한다고 다 되어버릴 것 같으면 뭐 이 세상 사람들 전부 다 행복한 삶만 살다가 가게? 그냥 편하게 살자. 되면 되는 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합리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긍정과 노력의 압력으로부터 다시 벗어난다. 한숨도 쉬고 '18' 소리도 내뱉고 욕도 한다. 불평하고 불만도 던진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언젠가 읽었던 자기 계발서의 대충 이런 구절이 불쑥 머리를 때린다.

‘의심이 문제다. 이런다고 되겠어? 의심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긍정적 흐름은 깨진다. 의심하지 말라. 반드시 된다고 믿으면 이루어진다. 의심하지 마라.’

그렇게 다시 좋은 생각을 시작한다. 미래를 건설적으로 그려본다. 하지만 이내 실패한다. 앞의 합리화 단계를 반복한다. 실패한다. 반복한다. 실패한다.


  결론. 그래서 나는 운을 믿기로 했다. 차라리 운을 믿으며 속 편히 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노력할 것이다. 준비할 것이다. 실패하고 떨어지고 낙담하지만 뻔뻔하게 도전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 오진 않지만 언제나 기분 좋은 그놈의 ‘운’을 기다리는 것이다. 긍정하고 부정하고 긍정하고 또 부정하기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운’이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믿음으로 다시 천천히 움직인다. ‘운’이란 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내가 더럽고 치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도, ‘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꼭 품어줄 테니까. 허황하고 대책 없지만 그런 믿음 하나 없이 살기에 이 세상은 너무도 거칠고 메마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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