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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18. 2019

사람이 조금 띨띨해야 하나를 끈덕지게 좋아한다.

덕질 그리고 덕질러에 대한 가벼운 고찰



스스로를 냉소하면서 나를 고치려고 하지만, 덕질은 도통 고쳐지질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자학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도 있겠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냉소하길 즐긴다. 스스로를 냉소하며 쾌감을 느끼면 그것은 병적인 것일 테지만, 나는 이따금 스스로를 냉소하는 일을 통해 나의 세상살이 방식을 반성하거나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냉소하는 행위로 교훈을 끌어내기 위해 발악을 하다니, 어쩐지 조금 안쓰러운 남자다(또 냉소야?).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를 비웃고 한심하게 바라봐도 고쳐지지 않는 고집스러운 성미도 분명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덕질’이다. 나는 뭐 하나를 좋아하게 되면 정신을 못 차리며 발광을 하고, 그걸 또 아주 오래 지치지도 않고 좋아한다. 어제는 곧 결혼을 앞둔 대학 동기와 약 9년 만에 연락이 닿아 카톡을 주고받았는데, 신입생 시절 그녀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떠벌리고 다녔던 건지 그녀가 나의 관심사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흠칫 놀랐다.




(출처: 스눕피 아이폰 카카오톡)




사람이 조금 띨띨해야 덕질도 잘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사람이 조금 띨띨해야 무언가 하나를 오래도록 고집스럽게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내 지론을 밝히는 것이니 다음과 같은 오해 및 욕설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이젠 피해의식이야?)


"나는 아이큐도 높고 스마트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무언가 하나를 오래 고집스럽게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런 나더러 띨띨하다고 말하는 겁니까! 이 새끼, 스눕핀가 뭔가 이 새끼 미친놈 아니야?"


같은 영화, 같은 드라마, 같은 소설, 같은 음악을 수십 번, 수백 번, 수천번씩 듣고도 또다시 새롭게 감탄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받고 환영받을 수 있는 지고의 가치라면 나 같은 쭉정이도 노벨상 정도는 가볍게 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나는 하나를 오래 또 깊게 파는 종류의 사람인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출처: JJJJound)



똘똘한 사람들에게 덕질은 그저 3낭일뿐이다.



'덕질'은 시간의 작품이다. '덕질'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절대적으로 '축적'의 개념으로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겐 유튜버 구도쉘리의 말마따나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띨띨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확연히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덕질'은 자기만족적 성격이 짙고, 당장 눈 앞에 어떤 결과물이 드러나거나 귓속으로 이런저런 평가의 말들이 들어오거나 통장 속의 돈이 늘어나거나 하는 식의 '실득'이 없다. 그래서 사리분별에 분명한 사람이나 세상을 명확한 인과의 틀에서 설명하려는 논리적인 사람이나 같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일을 계획하여 한꺼번에 착수하는 멀티태스커 형 사람들에게 '덕질'은 그저 3낭에 불과할 것이다. 3 낭이 뭐냐고요? 시간의 낭비, 재능의 낭비 그리고 에너지의 낭비입니다.



(출처: The Vinyl Company)



덕질러는 존중하면서 동시에 배척한다.


덕질러는 존중하면서 동시에 배척한다. 시간의 세례를 받아본 덕질러들은 무언가 하나를 깊이 또 오래 좋아하는 일의 지난함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유혹을 견뎌내며 지금 그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공식적인 증표를 주며 '공식 인증 전문가' 딱지 따위를 붙여주지 않아도 덕질러는 하등 개의치 않는다. '자기만족'보다 위대한 증명서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덕질러들이 몸소 체득한 삶의 교훈은 바로 '존중'의 미덕이다. 출신 대학, 직업, 직장, 수입, 외모 등과 관계없이 한 가지에 몰입하고 몰두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지혜가 들어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누군가를 만나면 일단 존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덕질러는 또다시 내 관심 분야로의 긴 여행길에 올라야 하기에 남의 관심사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무언가 하나를 오래 또 깊이 좋아할 수 있는 능력은 나의 개인적인 관심 밖의 콘텐츠를 재빨리 쳐내어 내 인생의 변방으로 밀어낼 수 있는 능력을 대변하기도 하기에 덕질러는 남의 관심사 따위 가뿐하게 배척해버린다.



(출처: Eric Kim)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것을 배경으로 인생을 긍정할 줄 아는 사람은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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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광고를 전공했던 내가 가장 재밌게 공부했던 잊히지 않는 교양 과목이 하나 있다. 철학과 교수님의 '경제와 철학'이라는 수업이었는데, 성적을 대체하는 기말 논문을 준비하며 나는 '중산층'과 '부자'라는 개념에 대해 며칠 밤낮으로 구글링을 했었다. 근데 흥미로운 점은 국가마다 '중산층'과 '부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너무나 상이하다는 사실이었다. 어디선 교양이나 문화 활동 수준 등을 그 기준으로 들먹였고, 어디선 오로지 연수입과 자가, 자차 보유 여부 등을 들먹였던 것이다. 내 기준에서 부자란 물론 일반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을 뜻하지만, 그것이 '부자'라는 개념의 전부를 설명해주진 못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덕질 대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어도 내겐 진짜 '부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 세상 속 수많은 선생님들은 거개가 부자이다. 그들이 내게 돈을 꿔주지는 못해도 삶의 지혜는 질릴 만큼 꿔주니까. 그만 좀 꿔줘요.



무릇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면서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말이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억지로 참아가며 열심히 하는 인내심을 배워야 한다?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라며 체념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도 밥을 벌어먹을 수 있도록 자기 계발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모두 다 맞다. 너무 싱거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취업이나 창업이나 창직이나 결혼이나 연애나 공부나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새삼스러운 현실을 깨달은 이상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걸 하루라도 빨리 찾아 그것에 몰입하고 즐기며 순수한 행복의 감정을 인생의 번외 게임으로라도 느껴봐야 한다는 것.


덕질만큼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잘 되는 게 없다. 거기엔 평가가 없고 그래서 우열도 없으니까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하얀 천과 바람 그리고) 축적의 시간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시간과 정성을 오래도록 들이는 것에 비해 돌아오는 게 너무 적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번 생에서 '덕질'은 포기하시는 걸로.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존중과 겸손의 미덕, 자투리 시간을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가짐, 계산 없이 순수한 행복의 감정, 이런 건 어디서 돈 주고도 못 배우는 '덕질'의 선물이다.


그러면 저는 또 미국 힙합 음악을 들으러 갑니다.*


* 사실은 이 글을 쓰는 내내 미국 힙합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1곡 반복 재생으로 들었는데요, 노래 제목은 Sneakin'입니다. Drake의 노래이고, 21 Savage가 피처링에 참여했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볼 땐 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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