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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20. 2019

추억을 팔아 돈이 된다면

어떤 추억은 죽어도 안 판다는 게 내 결론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떠들다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또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문다. 우리는 자주 추억을 판다고 얘기한다. 추억이 돈이 된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쓰잘데기 없는 내 기억의 조각들을 긁어 모아 돈과 교환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는 브랜드의 옷들을 종류별로 사 모을 것이다. 그러면 내 입은 찢어질 것이다. 쇼핑 중독을 이겨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끝판왕'을 깨는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사고 싶은 브랜드의 옷이 없는 경지에 이르고 나면 그땐 브랜드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된다고 어떤 부자들은 말했다. 사실 어떤 종류의 인생 게임이건 '끝판왕'을 깨본 사람에게만 그것에 대해 큰 소리를 낼 자격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달리 말해 지구 상의 어느 누구도 인생에 대해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친구에게 내 인생을 한 줄로 정리하면 '아무도 안 봐주는데 나 홀로 열심인 보여주기 식 삶'이라고 얘기했더니 크게 웃었다. 이런 카피도 팔아서 돈이 된다면 어디다가 좀 팔 텐데.



내 나이 서른을 넘으니 자연스레 '시간'과 '기억' 그리고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작가 생 텍쥐페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를 '나이'라고 했다. 당신이 현재 몇 살의 인생을 살고 있건 갑자기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건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이다, 라는 말을 그는 하고 싶었던 거라고 나는 곡해했다. 나이는 상대적인 개념인지라 누군가 이 글을 읽다가 "어린 노무 새끼가-"라며 스마트폰 액정을 주먹으로 내리쳐도 비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며 과거를 돌아보면 눈물이 나는 정상적인 사람일 거라고 나는 믿는다



오래전에 인천의 신포동에 '버거킹'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없어졌다. 엄마와 나 그리고 누나는 신포동의 미용실에서 자주 머리를 다듬고 버거킹에 놀러 가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데 그때 먹던 햄버거의 고기 향과 프렌치프라이의 튀김 향이 아직도 생생하다. 감각의 기억은 놀랍다.

어느 날인가 신포동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던 엄마를 기다리다가 나는 미용실의 탁자 모서리에 미간을 찍었다. 그때 나는 죽을 듯이 울었고 미간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버거킹 햄버거가 먹고 싶었다. 나는 인근 병원에서 급히 치료를 받았다. 그때 의사는 흉터가 남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던데, 내가 그 말을 직접 들은 기억은 없고 엄마가 전해줘서 나중에 알았다. 이마를 붕대로 감싸고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버거킹에 갔다. 말없이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집어 먹던 나를 가엾게 쳐다보던 엄마의 눈빛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이것은 벌써 20년도 훌쩍 지난 얘기인데, 미간에 여전히 남아있는 상처 자국 때문에 질리지도 않고 매해 나를 급습한다. 그리고 지금보다 스물몇 살이 젊었던 삼십 대의 엄마가 떠올라 짜증 나게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팔아서 큰돈이 된다고 해도 바꿀 생각이 없는 추억들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얽힌 따뜻했던 이야기나 작고 사소하지만 행복하고 애틋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추억을 팔아 돈이 된다면 나는 몇 가지 추억은 망설임 없이 팔 것이고, 몇 가지 추억은 누가 줘 패도 안 팔 것이다. 너무 많이, 그것도 되게 아프게 때리면 못 이기는 척 팔지도 모르겠지만.





* 프런트 이미지 출처: M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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