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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27. 2019

조언이나 충고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다.

이렇게 좋은 말은 대체 누가 만들어낸 거야?


가끔 아래를 내려다보며 같잖은 충고나 조언을 해주어야 할 상황이 찾아온다. 그것의 종류가 부탁에 대한 응답이든 자발적인 훈수이든 우리는 자기기만적인 말과 글을 내던지며 자주 괴로워한다. 나도 부족한 걸 남에게 가르치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출처: Pinterest)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이미 세상을 충분히 배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저 새끼의 말은 딱 반만 믿으면 된다고, 나머지 반은 대충 흘려들으면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방황하던 스물일곱의 어느 날, 아끼는 동생 하나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 일도 하고 싶고 또 저런 일도 하고 싶은데,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는 게 좋을지 그게 아니라면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아무 회사라도 들어가서 이런저런 일과 관련한 실무 감각을 익히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미친 새끼야, 네는 내 꼬락서니는 안 보이냐? 번지수 좀 제대로 찾으세요. 도로명 주소로 바뀌었어요."

이렇게 공격적으로 말하려다가


"음, 글쎄, 나도 잘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내 생각엔,"

이렇게 방어적으로 말해버렸다.


시간이 흘러 그 동생은 천주교의 신부님이 되기 위해 수원교구에 들어갔다. 그가 말했던 이런 일, 저런 일, 대학원에 진학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길을 뚝심 있게 선택한 것이다.

함부로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사실 충고나 조언이란 해주는 입장에서나 받는 입장에서나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법이니까.



(출처: Pinterest)


대학 졸업 연설의 시작 부분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멘트가 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사실 이 제안을 받고 굉장히 망설였습니다. 내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인생의 아주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는 여러분을 위해 감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나는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아닌데. 또 내 말이 무조건 정답이 아닌데, 무슨 말이든 내뱉음으로써 은연중에 어떤 프레임을 씌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대학 졸업 연설을 이렇게 시작한다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상상은 공짜니까.


"어차피 내가 무슨 얘길 해도 안 들을 거란 걸 잘 압니다. 그래서 사실 이 제안을 받았을 때,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못했어요. 나는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함부로 다 던지고 갈 겁니다. 걸러서 들으세요. 인생의 최종적인 선택은 당신이 슬기롭게 해내는 것입니다. 당최 내게서 무엇을 기대합니까?"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었나 싶지만, 아무튼 '조언이나 충고는 참고용'이라는 말은 인생의 진리를 잘 담아낸 명대사라고 생각한다. '조언이나 충고는 참고용'이라는 명문장을 사이에 두고 조언 공급자와 조언 수혜자는 자기 생각을 보다 객관적으로 수정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각자 입밖에 꺼내놓는 말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몰래 품은 채로.


'복안'이라는 명사가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복안'을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실 그 어떤 달콤한 말로도 개인의 '복안'을 누를 순 없다. 그걸 모르는 바보는 없다.




조앤 K 롤링의 졸업 연설은 정말 완벽했습니다. (출처: Youtube)



얼마  1년에   권의 책을 읽는다고 떠벌리며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조언을 남발하는 어떤 사람의 글과 영상을 보고 있으려니 짜증이 폭발했다. 나는  사람이 가진 사명감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가늠할  없지만, 나는 그가 날리는 인생 조언으로부터 '책임감' 아닌 대책 없는 '무책임'만을 읽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만 그를 추종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조언이나 충고는 참고용'이라는 명대사를 가슴에 확고하게 품은 사람들이었기를, 아니, 사람들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출처: Pinterest)


나도 흔들릴 때면 선배들의 조언과 충고가 너무나도 고프다. 인생 선배들이 나보다 앞선 시간을 살아내며 체득한 교훈을 나는 조금도 무시하지 않는다. 도리어 대부분의 경우 경외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이든 폭력적이고 지랄 맞은 단언과 어림짐작에는 극도의 거부감을 느낀다. 재수 없어.


조언과 충고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다, 나는 이 명문장이 좋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것을 줄곧 따를 것이다.


* 프런트 이미지 출처: PEANUTS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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