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아도 괜찮니?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 하나와 오랜만에 만났다. 중간 약속 장소에 도착해 먼저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차에 올라탔다. 식당까지 이동하는 동안 친구의 스마트폰과 연결된 차량 스피커에서는 먼데이키즈, SG워너비, 씨야, 포맨 등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 하나하나는 분명 주옥같았지만, 개인적으로 즐겨 듣지 않는 종류의 음악이었다. 폭스바겐 골프가 타임머신은 아닐 테고 올해가 2007년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봤는데, 창밖으로 흘러가는 배경이 분명 2020년이었고 사이드 미러에 비춘 나의 면상이 분명 서른 하나였다. “와, 우리 고딩 때 듣던 노래~”라고 나는 하나 마나 한 말을 했고 친구는 “너껄루 연결해서 들을래?”라고 대답했는데, 나는 “괜찮다”라고 말했다. 이건 가식이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먼데이키즈가 금방이라도 곡소리를 낼 듯 흐느끼며 노래를 부를 때 나는 밥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엉엉 울고 싶었으니까. 그나저나 소몰이 괜찮니?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감을 때면 미용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늘 “물 온도는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시는데, 나는 약간 차가워도 “괜찮다”라고 얘기하고 약간 뜨거워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속으론 안 괜찮으면서 겉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건 가식이다. 하지만 물이 아주 뜨거워서 두피가 홀라당 벗겨지기 직전이거나 또는 아주 차가워서 골이 깨질듯한 상황이 아닌 이상 괜찮기로 작정한 것이 약 15년도 더 된 것 같다. 나는 미용실만 가면 뜨거움과 차가움의 감각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그나저나 두피 괜찮니?
나는 누군가로부터 칭찬의 말을 들으면 늘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도대체 뭐가 아닌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하게 "아닙니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이것도 가식이다. 칭찬 공격을 받으면 닥치고 감사할 일이지 칭찬의 말씀을 구태여 부정할 건 또 뭐란 말인가. 김정운 작가님은 '겸손은 대부분 가식'이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당신의 어떤 저작을 통해 전하신 바 있다. 그나저나 뭐가 아니니?
내가 사는 아파트는 수요일마다 장이 서는데, 얼마 전 밤 9시경에 와플이 무지하게 땡겼다. 혹시나 장사를 마감할까 심히 걱정되어 만원 짜리 한 장을 집어 들고 급히 장터로 뛰어갔는데, 어린 여자 아이 하나가 그녀의 아빠와 함께 먼저 주문한 와플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부녀를 비집고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 “안녕하세요. 와플 하나만 주세요”라고 주인아주머니께 당당히 이야기했는데, 아주머니는 내게 “응, 3분 정도 걸리니까, 이 아이 먼저 주고잉~”이라고 말씀하셨다. 내 나이 비록 서른 하나지만 와플 아주머니로부터 반말을 들을 수 있다는 현실에 기분이 쾌하면서도 대단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내 와플 하나를 받아 들고 집으로 뛰어들어가는데, 아까 나보다 먼저 와플을 받아 쥔 꼬마 아이가 몇 분 동안 밖에서 킥보드를 탄 모양인지 나와 같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손에 (바닐라맛) 와플을 쥔 서른한 살 아저씨와 손에 (초코맛) 와플을 들고 킥보드 옆에 선 꼬마 여자 아이 사이의 완벽한 불균형.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직전에 나는 꼬마 아이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고, 그녀의 어떤 기대에 부응하고자 세상에서 가장 흐뭇한 표정으로 꼬마 아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와플을 한 입을 깨물었다. 사과잼과 생크림의 조합에 기분이 쾌하면서도 대단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젠장! 가식으로 물든 그 흐뭇한 미소는 짓지 말았어야 했다. 그나저나 와플 맛 괜찮니?
누구나 자유 하나쯤 누리며 산다.
나는 가식 인생을 산다.
가식은 자유이고 또 공짜니까.
그나저나 그렇게 살아도 괜찮니?
나새끼 가새끼(나 같은 새끼, 가식적인 새끼).
[프런트 이미지 출처: 미국 시트콤 The Off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