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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pr 15. 2020

살은 안 쪄도 말은 많아지네요.

만 서른 살이 되고 나서의 소감을 밝힙니다.

나는 태생적으로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을 타고났다. 더구나 뭘 먹어도 맛있게 먹지를 않고 많이 먹지도 못하니 살이 찐다는 건 내게 그저 아득한 일이며 남의 일일 뿐이다. 조금만 먹어도 살이 잘 붙는 선생님들께서는 이런 나의 멘트가 오만하게 느껴지실 테고, 그렇기에 선생님들께서 나를 실제로 만나게 되었을 때에 "브런치에 스눕피 님이 쓰신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는 표현은 정말 기분이 너무 나빴어요"라고 운을 떼며 있는 힘껏 몇 대 줘패신다고 해도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의 실물과 마주한다면 때릴 곳이 그리 마땅치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이 먹으면 어련히 다 살쪄'라는 흔한 위로의 말씀에 나는 크게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렇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사람은 정말 안 찌는 것이다. 도대체 허리가 얼마나 얇은 것인지 벨트를 하도 조여 매어 벨트의 끝부분이 길바닥에 닿기 직전까지 덜렁거리던 전 직장 상사가 있었는데, 그분의 나이는 무려 오십 가까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따라서 나는 결혼하면 살찐다는 누군가의 말씀도 현재로서는 믿지 않고 있는데, 이렇게 훗날을 도모하는 방식을 계속 취한다면 나는 죽기 직전에야 살이 찌는 일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먹으면 말이 많아진다'라는 말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지난주에 나는 만으로 서른 살이 되는 일에 성공했는데, 확실히 10대, 20대의 나를 돌아보며 정직하게 비교해보면 말이 꽤나 많아졌음을 깨닫는다. 요즘에는 쓸데없이 너스레를 떨거나 할 말이 없는데 부러 입을 털며 자연스러운 척하는 나의 모습에 나 스스로도 놀라 뒤로 자빠지곤 한다. 얼마 전에 만난 대학 동기 하나도 내게 "예전에 말이 없던 애들이 말이 많아져서 아주 좋다"라고 말하며 "너도 말 별로 없지 않았어? 이제야 말이 통한다"라고 좋아하였고, 나는 머쓱하였다.



대학교 1학년 때인데, 학과 여자 동기들 서너 명이 모여서 수다를 떨며 저 멀리서 걸어왔다. 나를 발견한 그 친구들은 우르르 내게 달려와 이것저것 캐묻고 킥킥대며 소녀들 특유의 수적 우세로 나를 짓눌렀다. 그녀들이 빈 강의실에서 간식을 먹는 동안, 나 또한 어쩌자고 그녀들과 자리를 함께했는데, 그때 나는 마치 벙어리 삼룡이라도 된 것처럼 무슨 말도 못 하고 그녀들의 말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땀만 삐질삐질 흘렸다(이건 멍청한 건가). 지금이었다면 무슨 말이라도 잔뜩 꺼내놓으며 '재미'를 보기 위해 발악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날의 어떤 대화가 내 인생을 바꿨을지도 모르겠고. 아, 말 좀 많이 하면서 살 걸.



내가 두고두고 반복해 보는 영화가 하나 있다. <10 items or less>(2006)라는 미국 영화인데, 배우 모건 프리먼이 주연을 맡았고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곧 리뷰해보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모건 프리먼이 대형 할인매장 Target타깃에 들러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눈길을 주며 살갑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자 그를 지켜보던 여자 주인공이 이렇게 묻는다. "항상 아무하고나 그렇게 대화를 나누세요?" 그러자 모건 프리먼은 "사람들과의 소통은 인생의 양념이니까'라고 말한다. Spice of Life, 인생의 양념.


정말 훌륭한 영화다.


내 나이 만 서른, 줄곧 과묵하게 마치 삼룡이처럼 살아왔던 나이지만, '인생의 양념'을 발견하고부터는 말없이 싱겁게 사는 삶이 참 별로라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과묵하고 말수가 적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번 말하기의 즐거움을 깨닫고 나니 내가 생각보다 말이 많은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더욱이 나처럼 나쁜 의미에서의 '내면세계'가 발달한 별스러운 사람들은 사사로운 대화의 소재가 무지하게 많아서 두어 시간만 주면 상대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라고 자신한다. 어찌 보면 이런 나의 타고난 기질을 숨기기 위해 그간 그토록 과묵한 척 애쓴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자신을 속이고 과묵하게 산 햇수가 30년이라니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지만, 광역버스에 조용히 앉아 만 서른이 된 것을 자축하며 아이폰 메모장에 글을 끄적이며 궁상을 떨었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식으로든 더 나아지길 바란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더 많이 나누며 인생의 양념질도 야무지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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