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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pr 26. 2020

삶은 조금도 극적이지 않다.

최소한 내 삶은 그렇다는 말이다.

누구나 극적인 삶을 꿈꾸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극적인 순간도 늘 ‘내 인생’만은 부드럽게 비껴간다.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며칠 전에 강남역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눈에 걸리는 국내 작가의 에세이를 하나 집어 들고 조그만 간이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딴생각을 한 가득 집어넣고 책은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는데, 어떤 여성분께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나는 솔직히 떨렸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그녀에게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무슨 책을 그리 집중해서 보느냐고, 책 제목 좀 가르쳐달라는 호기심의 언어였다. 그녀는 내게 포교를 위한 포섭 공작을 펼친 것이었거나 정말로 내가 읽고 있는 책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는데, 나는 조금은 다른 말씀을 기대했던 것인지 정말로 냉담하게(싸가지 없이) 책 제목을 이야기해버렸다. 나는 그녀의 입으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관련하여 언젠가 대한민국의 래퍼 팔로알토 선생님께서는 나 같은 삼돌이를 두고 그의 노래 <Would You Be My>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떨칠 때도 됐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가짐.




돌아보면 대입을 준비할 때도, 취업을 준비할 때도 그랬다. 각종 무용담과 성공담의 주인공은 늘 그들이었고, 내게 극적인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내게는 모든 결과가 백로처럼 정직하였고 제주삼다수나 백산수처럼 투명하였으며 회전초밥집의 레일처럼 지루하였다. 더욱이 나를 평가하는 그들은 나의 부족한 점을 조금도 오해하지 않고 나의 약점으로 적확하게 해석하였고, 나의 강점을 조금도 확대 해석해주지 않았다. 관련하여 언젠가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님께서는 나 같은 지질이를 두고 그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어.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동인천의 자유공원에 올랐다. 자유공원에 오르면 인천 앞바다가 잘 보인다. 그리고 시선을 왼편으로 옮기면 저기 내가 사는 동네가 보인다. 자동차로 약 7~8분 거리다. 평소에 나는 바다를 가까이에 두고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가끔 그곳이 어디든 이렇게 위로 올라와 내 눈에 조감도를 그려 넣으면 내가 바다 옆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 삶은 변함이 없으나 눈높이만 바꾸면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걸 알기에 누구라도 그러하듯 나 또한 일단 참고 인생을 살아보기로 한다.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의 그날을 막연히 기약하며.


누구나 편히 방문해 인천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미국 힙합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멋진 장소를 하나 만들고 싶은 철없는 바람이 있다.


동인천 자유공원의 언덕을 오르고 내리듯이 내 마음대로 인생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가 없기에 현재 내 상황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게 쉽진 않겠으나, 언젠가 내 인생이 꽤나 높이 올라가는 날 또는 밑바닥까지 내려앉는 날, 나는 아마도 내 인생의 매 순간이 사실은 매우 극적이었으며 아름다웠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고 이마를 탁 칠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SBS에서 방영한 682부작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정배' 선생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맙소사!


인생의 깨달음은 '맙소사!'와 함께 찾아온다.


바다 가까이에 살면서 바다 가까이에 사는 줄 모르는 멍청한 놈이 내 인생이 사실은 꽤나 아름답고 극적이란 걸 평소에 알아차릴 턱이 있을까. 위로 올라가든 아래로 하염없이 내려가든 내겐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 터이다. 관련하여 대문호 서머싯 몸 선생님께서는 언젠가 나 같은 핫바지를 두고 그의 소설 <면도날>의 어떤 장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가끔 보면 선생님은 스스로 아주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그렇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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