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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pr 28. 2020

읽고 쓸 줄 모르는 할머니.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았다.


나의 할머니는 한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 할머니는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할머니가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 알았다. 정말로 무심하고 무감각했던 것이다. 마치 내가 매복 사랑니를 뽑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치과의 얼얼하고도 뻐근한 마취제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막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미국에 있는 막내딸, 즉, 나의 이모네 집에 함께 가자고 내게 말했다. 나는 할머니의 돈으로 미국 이모 댁에 갈 기회가 생겨서 기분이 좋았고, 곧 할머니와 함께 미국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구청에 갔다(2010년의 일인데, 비자 발급이었는지 여권 신청이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미국 비자(여권) 발급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서류를 작성해야 했는데, 나는 할머니의 것을 대신 빠르게 써주고 내 것도 썼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 서류의 서명 부분만을 남겨 놓고 할머니께 서류를 건넸다. 마치 내가 할머니의 개인 비서라도 되는 것처럼.



할머니, 여기에 이름만 쓰면 돼요.




내 말을 듣고 할머니는 몇 번인가를 망설이다가 누가 훔쳐가지 못하도록 또는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또는 깜빡하고 집으로 가져가는 일이 없도록 꼬불꼬불한 플라스틱 선으로 묶어놓은 펜을 들고 당신의 이름, '장인숙'을 적어 넣었다.


ㅏㅈ ㅣㅇ

  ㅇ    ㄱ


아, 그때 나는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았고, 20년 넘게 이어져 온 나의 무신경함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할머니는 태어나자마자 고아로 자랐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가 여기저기서 종살이를 했다고도 들었다. 그러다가 북에서 온 할아버지와 만나 결혼했다. 나 홀로 태어나 단독하여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는 일이 아니다. 그 인생의 막막함을 나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주 나약하기 때문이다. 사방이 캄캄한 막막한 어둠 속에 내던져진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부정하거나 긍정하거나. 할머니는 후자를 택했다. 틈만 생기면 쉴 새 없이 웃는 할머니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성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매일 투덜대고 짜증내기를 즐겨온 내게 할머니의 환한 웃음과 은근한 미소는 하나의 치료제가 되어 주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상의 사건을 바라보려는 할머니의 노력은 절대로 실패로 끝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사건은 잊히고 감정은 식기 마련이니까. 반면 나는 늘 그것에 실패한다. 멍청한 줄 모르고 잘난 체하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엄친아의 전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억지스러운 이야기란 걸 잘 알지만, 나의 할머니가 한글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한글을 가지고 노는 일에 유난히 더 집착하는 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할머니는 언젠가 한글을 배우기 위해 노인 학교에 다니셨는데 중간에 과감하게 때려치우시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할머니로부터 빠른 포기의 정신도 함께 배웠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내가 N포 세대의 선두주자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튼 누가 뭐래도 나는 할머니의 몫까지 한글을 잘 활용하고 싶다. 마치 내가 주시경 선생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내가 생방송 불이 켜진 방송국 내의 아나운서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내가 우리말 겨루기의 명예 달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더불어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마치 내가 로마 교구의 주교라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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