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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May 20. 2020

1조 원을 번 래퍼가 딸에게 들려주는 생의 지혜

제이지의 노래 한 곡은 자기 계발서 못지않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약 일주일 만에 돌아온 스눕피의 미국 힙합 이야기(구 스눕피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입니다.

오늘은 위인의 노래 한 곡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제이지

미국 힙합 아티스트를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웬 위인 타령이냐고요? 뉴욕 브루클린의 저소득층 임대 주택 단지에서 나고 자라며 마약이나 팔던 찢어지도록 가난하고 터프했던 과거를 저 멀리 밀어내고 힙합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포브스 인증) 1조 원의 재산을 취한 랩 아티스트에게 '위인'이라는 칭호는 그리 어색하거나 부끄러운 키워드가 아니겠죠. ‘돈'과 '도덕성'이 지고의 가치로 기능하는 2020년인걸요. 그래서 제이지 선생님을 위인이라고 한번 불러봤어요. 혹 제 표현에 불만이 있으시면 메일 한 통 보내주세요. G메일 스마트폰 간 알람 설정도 해놓아서 답장이야 금방 드립니다.


(이미지 출처: Rap Basement)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오늘의 추천 아티스트는 뉴욕 브루클린의 황제, 래퍼  사업가 'Jay-Z제이지'이고, 추천곡은 그의 열세 번째 정규앨범 <4:44>(2017) 마지막 트랙 'Legacy'입니다.



 


제이지는 1996년, 27살(한국 나이로 28살)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Reasonable Doubt]이란 앨범과 함께 데뷔 후 래퍼로서 승승장구했는데요, 그는 단순한 음악적 성취를 넘어 의류 사업(Rocawear), 엔터 사업(Roc-A-Fella Records/Roc Nation), 주류 사업(D’Ussé), 음악 스트리밍 사업(Tidal), 주식 투자(제이지가 한화로 약 25억을 주고 산 Uber의 주식은 현재 900억에 육박합니다) 등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그리하여 힙합 씬 최초의 빌리어네어가 된 것이죠.





도니 해서웨이

선생님들께서는 혹시 'Donny Hathaway도니 해서웨이'라는 흑인 가수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알앤비, 소울 음악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면 아주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미국 소울, 알앤비, 가스펠 음악의 대부이자 진부한 표현이지만 '가수들의 가수'로 유명한 선생님입니다. 도니 선생님(이하 도니쌤)께서는 1979년 1월 15일, 33살의 나이에 뉴욕 Essex House Hotel의 15층에서 뛰어내려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요, 해당 사건으로 더 널리 이름을 알리기도 했죠.



도니쌤은 당신의 노래 제목으로부터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듯이('The Ghetto', 'Little Ghetto Boy', 'Someday We'll All Be Free' 등) 70년대 미국이라는 사회 속에서의 '흑인' 내러티브를 담은 곡으로 동세대 흑인들은 물론 후세대 흑인들에게 깊은 영감과 뜨거운 감동을 선물한 가수입니다. 물론 후세대 힙합 아티스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도니쌤은 생전에 우울증과 조현병 등으로 고생을 했는데요, 이 때문에 그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아, 잠깐만요. 오늘의 주인공은 도니쌤이 아니잖아요. 이쯤에서 그만 줄여야겠습니다.


제가 '제이지' 선생님(이하 제이쌤)의 곡 'Legacy'를 설명하기도 전에 왜 느닷없이 도니쌤에 대한 설명을 먼저 구구절절했느냐면(쉽사리 짐작하셨겠지만), 해당 곡이 도니쌤의 'Someday We'll All Be Free'를 샘플링한 곡이기 때문입니다. 잔말이 없으면 스눕피가 아니죠. 참고로 도니쌤 또한 공공 주택 단지에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인물입니다. 둘이 통하는 게 있어요.






LEGACY

제이쌤의 'Legacy'는 도니쌤의 곡 'Someday We'll All Be Free'를 샘플링한 아름다운 랩송입니다. 특히, 도니쌤의 'Someday We'll All Be Free'는 과장 좀 몇 스푼 더해서 흑인들의 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노래인데요(제목을 좀 보세요), 그것을 매력적으로 변형하여 곱씹을만한 이야기를 담은 제이쌤의 'Legacy'는 그 가사와 함께 새로운 유의미를 창조해냅니다.




노래 'Legacy'는 제이지와 그의 와이프 Beyonce비욘세의 어린 딸 'Blue Ivy Carter'의 다음과 같은 물음과 함께 문을 엽니다.


 

Daddy, What's a will?
* 여기에서의 will은 유서, 유언, 유언장 심지어 의지라고 해석되어도 모두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해요.



이에 대부호 제이지는 딸의 질문에 랩으로 응답합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그 막대한 돈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말하고,


Take those money
and spread 'cross families

딸아, 이 돈을 가족들에게 나눠주거라!

-분배좌 제이지-




흑인의 생을 곱씹기도 하며,


There was a time America
wouldn't let us ball*

흑인들이 부자처럼
잘 먹고 잘 살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지.

or 흑인들이 야구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어.

-볼보이 제이지-



* 여기에서의 ball은 슬랭으로서 부자처럼 돈도 많이 벌고 잘 먹고 뽐내며 산다,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고, 우리가 흔히 볼을 친다, 볼을 찬다고 말할 때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미국에서 흑인들이 프로 야구 경기에 참여할 수 없었던(인종 차별 때문에)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중반 사이, 과거 흑인들의 처우 이야기를 말하기도 합니다.




또 흑인으로서의 긍지를 일깨우기도 합니다.


Black Excellence baby,
you gon' let'em see

흑인의 우월함, 네가 보여주게 될 거야.





노랫속에서 딸의 열린 질문에 대한 빌리어네어 래퍼 겸 사업가 제이지의 대답의 열쇠는 이렇습니다.




Generational wealth, that's the key.
세대의 부, 그게 핵심이란다.

-세습좌 제이지-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지는 부의 연속, 그것이 핵심이라고 천명하는 제이쌤, 하지만 그는 지네 식구만 챙기는 이기적인 남자가 아닙니다. 그는 더 넓게 함께 잘 사는 흑인 사회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무려 1조 원을 벌어들인 흑인 청소년들의 ‘롤 모델’이니까요.



“We gon’ start a society within a society.
That’s major just like the Negro League.”

사회 속의 사회를 만드는 거야, 그게 중요해.
마치 니그로 리그*처럼 말이야.


* 니그로 리그는 인종 차별로 프로 야구 리그에 참여할 수 없었던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중반의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프로 야구의 하위 리그를 말합니다.




교훈

제이지는 노래의 두 번째 벌스를 통해 자기의 아픈 과거사를 밝히면서 동시에 핵심적인 인생의 교훈을 때려 박는데요, 두 번째 벌스의 모든 문장이 개인적으로는 참 와 닿았습니다.





[Verse 2]

You see, my father, son of a preacher man.

전도사의 아들이었던 나의 아버지,


Whose daughter couldn't escape the reach of the preacher's hand.
하지만 전도사의 딸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


* 제이지의 할아버지는 전도사였고, 그의 딸이자 제이지의 고모는 어린 시절 제이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합니다.


That charge of energy set all the Carters back
그게 우리 집안을 망쳤지.


It took all these years to get to zero in fact
원점으로 회귀하는데 이만큼의 세월이 들었다고.


I hated religion ‘cause here was this christian.
난 종교가 싫었어, 그놈의 기독교 때문에.


He was preachin’ on Sundays, versus how he was livin’ Monday.
일요일마다 설교하던 할배는 평일엔 개판이었거든.


Someday I forgive him

언젠가 난 그 인간을 용서할 거야.


‘Cause strangely our division led to multiple religions
신기하게도 우리의 갈등이 다양한 종교로 날 끌고 갔거든.


I studied Muslim, Buddhist, and Christians

이슬람, 불교 그리고 기독교를 공부했어.


And I was runnin’ from him, He was givin’ me wisdom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 할배는 내게 지혜를 준 셈이야.


See how the universe works?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니?


It takes my hurt and help me find more of myself
내게 아픔을 줬지만 진짜 나를 찾도록 도와준 거지.


It’s a gift and a curse

선물인 동시에 저주 말이야.


That’s called the Red Queen’s Race*

레드퀸의 달리기라고 부르지.


*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여왕 '레드퀸'이 나오는데요, 뒤로 움직이는 체스판 모양의 마을에서 레드퀸은 앨리스의 손을 잡고 빨리 달리지만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왕은 앨리스에게 말합니다.
 
"제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 만약 앞으로 가고 싶으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



그렇습니다. 제이지는 자기의 수치스러운 가족사를 딸에게, 또 전 세계인들에게 대놓고 공개합니다. 자신의 친딸인 제이지의 고모를 성추행하던 할아버지는 기독교도 전도사였고, 해당 사건은 제이지의 집안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행했던 다양한 종교 공부와 현실 탈피 욕구는 그에게 '나'를 찾는 시간이 되어주었다고 말이죠. 그리고는 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앞선 레드퀸의 달리기와 연결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You run this hard just to stay in place.
단지 제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빡세게 뛰어야 한단다.

Keep up the pace, baby.
페이스를 유지하는 거야.

Keep up the pace.
페이스 유지 말이야.

You run this hard just to stay in place.
현재에 머무르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뛰어야 해.

   



노래 'Legacy'를 통해 대부호 래퍼 제이지가 딸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하나하나 정성 들여 읽고 정리하다 보니 수많은 성공 철학서, 자기 계발서, 경영서에서 부르짖는 인생의 교훈들이 가득 담겨 있다는 걸 느낍니다. 아, 감동이어라. 송가인이어라?



나의 식구를 지극히 아낄 것,

자존감을 팽팽하게 지킬 것,

개인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를 돌아볼 것,

세대를 거듭하며 연결될 수 있는 부를 쌓을 것,

불우한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낼 것,

단지 오늘의 현실을 잘 살아나가기도 어렵다는 걸 깨닫고 끝없이 노력할 것.




'Legacy'의 시작과 끝, 깊은 소울이 담긴 도니 해서웨이 선생님의 절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Someday We'll All Be Free"



언젠가 우리 모두 자유로워질 거랍니다.

제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웁니다. 엉엉......


여러분, 힙합 음악이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교훈적입니다.

자꾸 욕하고 돈 자랑만 하는 게 힙합이 아니라구요!



도니 해서웨이 선생님의 'Someday We'll All Be Free'를 기왕이면 라이브 버전으로 꼭 먼저 들어보시고, 이후에 제이지 선생님의 'Legacy'를 연이어 들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눈물이 나도 제 잘못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 곡이 바뀌어도 제 책임은 아닙니다.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도 제 탓은 아닙니다.


스눕피의 미국 힙합 이야기,

다음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꾸벅.







[오늘의 추천곡]

https://www.youtube.com/watch?v=APInB32quOo


https://www.youtube.com/watch?v=hJ1dY9h9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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