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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ul 14. 2020

나는 삐딱한 놈인가 보다.

남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넌 도대체 좋아하는 게 뭐니?



어린 시절부터 미국의 힙합 음악에 푹 빠져서 지냈다. 그런데 미국 힙합 문화로부터 좋은 건 안 배우고 나쁜 것만 골라 배운 탓인지 삐딱했다. 친구들은 자주 넌 도대체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호부의 기준이 아주 명확할 뿐이며 사실은 좋아하는 것 투성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그건 진짜였고 지금도 입장 변화는 없다.


대학 시절 열렬히 '좋아했던' 여자 친구는 너그럽고 수더분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를 두고 '삐딱이'라고 불렀다. 현재 상승세를 타고 있는 <미스터트롯> 정동원 군의 별명은 '삐약이'라서 귀엽기라도 하던데, 내 별명은 하필 '삐딱이'여서 징그러웠다.


아무튼 내가 아무리 부정하고 변명하여도 남들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 인생사 진리라는 걸 알기에 나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삐딱한' 사람임은 분명해 보이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


내게 있어 중학 시절은 말끔히 지우고 싶은 과거이고 고등학교 시절은 소중히 보관하고 싶은 과거인데, 생각해보면 내가 삐딱하게 변한 건 분명 저 망할 중학 3년 때문인 듯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노스페이스'라는 브랜드의 검은색 백팩을 하나 샀다. 1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노스페이스' 백팩을 멘 최초의 사나이였음을 이 자리에서 밝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그것을 훔쳐갔다. 하필 또 비가 오는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울상을 짓고 있던 나를 본 아빠는 늦은 시간에 나를 데리고 함께 학교로 갔다. 그리고 학교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졌다. 물론 아무리 찾아도 가방은 보이지 않았고, 다음날부터 나는 지나가는 애들을 모조리 잠재적 약탈자 취급을 하며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저 새낀가?", "그래, 저 새끼다, 외모가 딱 약탈자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에는 N'GENE엔진, SMEX스맥스, COAX콕스라는 브랜드의 의류가 대유행이었는데, 어느 날 한 양아치 친구가 내게 밤색 '콕스' 티셔츠를 빌려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여자 친구와 놀러 가기로 했는데, 그날 하루만 그 옷을 꼭 입고 싶다고 말하면서. 나는 그러마고 했고 옷을 빌려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친구는 내게 '우리 엄마가 티셔츠를 버렸다'라고 나에게 거짓말하였고, 나는 그날 너무나 슬퍼서 몹시도 울었다. "그래, 다 필요 없어. 이제 난 그 누구에게라도 아무것도 빌려주지 않을 거야. 난 삐딱해질 거야. 시팔."


아무튼 중학 시절 초반에 겪은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나는 늘 밥맛이 없었고 눈치를 봤고 삐딱하게 앉아서 샤프나 돌렸다. 그리고 무언가 몰두할 거리를 찾았다. 그리고 선택한 게 '미국의 힙합 음악'이었다. 틈만 나면 쌈박질이나 하는 남자 중학교 특유의 거친 분위기도 별로였고, 기회만 되면 어린 친구들의 귀때기를 후려갈기거나 바리깡으로 뒷머리를 쥐가 파먹은 듯 잘라버리는 선생님들의 위압적인 태도도 지긋지긋했다.


하교 후에는 침대에 드러누워 CD 플레이어로 '우탱클랜'이나 '투팍', 스눕피라는 필명을 제공한 '스눕독', '나스' 등을 위시한 미국 래퍼들의 구닥다리 힙합 앨범을 집중하여 듣고 또 들었다. 마치 엄마한테 혼날 일만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 곁눈질로 보았으면서도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억지로 무언가에 몰두한 척하는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요즘도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남자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조금 주제넘은 참견이지만,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중학 시절에 대단한 상처를 입었다거나 막대한 피해를 본 일은 없었지만, 작게나마 남아 있는 당시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중 단 하나의 기억도 상쾌하거나 유쾌한 감정과는 전혀 연결이 되어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얼마 전에 '롯데리아'에서 '폴더 버거'라는 걸 출시했는데, 친구와 함께 롯데리아 매장 앞을 지나가다가 <버거 접습니다>라는 카피가 큼직하게 쓰인 광고를  하나 보았다.


친구가 물었다.

"야, 뭐야! 롯데리아 햄버거 이제 안 해?"


나는 말했다.

"야, 저런 거에 속냐?"


친구가 말했다.

"그럼 뭔데?"


나는 말했다.

"뭐, 햄버거 접어 먹는 건가 보지."


친구가 말했다.

"야, 너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응, 맞아. 내가 좀 삐딱하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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