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게 완벽하고 끔찍하게 슬픈 이야기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의 나이 ‘마흔’에
쓴 에세이 ‘The Crack-Up’의 문을 열며
모든 인생이란 서서히 해체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아내 젤다의 정신 분열 그리고 회복 이후의 재발, 낭비하는 삶을 뒤따르는 빚더미는 피츠제럴드의 인생을 졸졸 따라다니며 힘들게 했으니까.
그는 지나치게 음주했고, 한 번은 자살 시도도 했다.
1919년 10월, 23살의 피츠제럴드는
단편 소설 <컷글라스 볼>을 썼는데,
그것의 내용이 참 가슴 아프고 답답하다.
훗날 40살이 되어 직접 느낀 인생의 개념,
‘해체되고, 망가져 가는 일련의 과정’을
미리 내다본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컷글라스 볼>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문장이 잠시도 한 군데 머물러 있지 않고,
독자는 그 뒤를 따라가기가 바쁘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러한 기적적인 재간을
익히게 되었을까? 영원한 수수께끼다.”
<컷글라스 볼>은 ‘이블린’이라는 미인이
점점 늙어가며 빛을 잃는 과정을 그리는데,
초장에서 27살로 생기 있던 그녀는
종장에 이르러 맥없는 46살이 되어버린다.
그녀의 딴짓과 남편의 관계, 집안의 재정,
자식들의 상태 변화는 거침이 없다.
소설의 제목을 제공한 물건이자
소설의 굵직한 사건들과 얽혀 움직이는
컷글라스 볼,
그것들은 ‘이블린’이 결혼 축하 선물로
받은 것인데,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딱딱하고, 아름답고, 공허하고,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것"
소설 속에서 그녀가 결혼 축하 선물로 받은
의미 있는 물건 ‘컷글라스 볼’은 본연의 기능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자꾸만 삐걱댄다.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한 사람의 인생을 아작내고,
가정의 경제를 바닥 치게 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부르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의 가치도 변화한다.
유리그릇이라면 금이 가고, 깨어지고, 도색이 벗겨진다. 물론 찬장 속에 고이 모셔두며 처음의 가치를 간신히 유지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세월과 운명에 굴복한 나의 달라진 인생이 속이 환히 보이는 유리를 정직하게 통과해버리는 것마저 막을 순 없다. 그게 인생이니까.
짧은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는
도처의 말씀은 아주 지겨운 이야기인데,
짧은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이야기는 생소하지만 그럴듯하다.
피츠제럴드의 단편 <컷글라스 볼>은
짧은 소설 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거리를
담아 던질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아 뿌릴 수 있는지 멋지게 증명한다.
[프런트 이미지 출처: Collectors Wee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