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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22. 2020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일에 대하여

Feel Jeans, 경양식 돈가스 그리고 써브웨이 로티세리 바비큐 치킨



Feel Jeans라는 캘리포니아 기반의 청바지 브랜드가 있다. 근데 이 브랜드의 컨셉이 좀 독특하다. 그들은 한 가지 스타일의 시그니처 청바지만 판매한다. 휴, 천만다행인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청바지 색을 고를 수 있는 자유만은 허락한다는 점인데, 블루, 블랙 그리고 화이트 세 가지의 옵션을 제공한다. 일단 감사합니다.


thefeelstudioinc.com


Feel Jeans를 만드는 The FEEL Studio Inc. 의 창업자 ‘Stevie Dance’는 직업도 다양한 꽤 이름 난 인플루언서인데, 소위 말해 청바지 덕후였다. 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 쏘다니며 바쁘게 사는 삶 속에서 때와 장소에 맞는 청바지를 여러 벌 챙겨 다니는 게 번거롭고, 어떤 종류의 청바지가 선사하는 불편함이 싫다는 이유로 약 4년 동안 청바지 연구와 제작에 몰입했단다. 그렇게 드레스 업 앤 다운을 동시에 싸잡아 만족시키고, 앉을 때 버튼을 풀지 않아도 되는(Feel Jeans는 버튼 플라이다) 시그니처 스타일의 청바지 만들기에 성공한다. 가격은 275달러.



작년에 대학 후배와 인천의 한 경양식 집에 들러 주문을 하려다가 메뉴판이 없어 당황하고 있었는데, 주인아저씨가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저희는 메뉴가 돈가스 하나입니다.” 아, 결과적으로 백화점 푸드 코트의 ‘돈가스’를 연상케 하는 비주얼과 그에 상응하는 맛 그리고 적지 않은 가격에 놀라 우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지만,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가격은 1만 8천 원.



때로 사람은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불친절함에 강하게 이끌리곤 한다. 자유로부터 자꾸 도피하려는 현대인은 그것들에 대해 어떤 기대감을 품게 된다. 선택지가 단 하나라니, 아, 떨려! 혹은 아, 궁금해! 혹은 아, 기대돼!



16년 전 인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소지섭이 임수정을 향해 내뱉던 명대사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는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박력 때문에 매력적이었다. 스티브 잡스 선생님의 말마따나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도 죽어서까지 그곳에 가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밥을 먹고 말지. 죽긴 왜 죽어.


KBS2


그저께는 써브웨이 인천 XX점에 들러 ‘로티세리 바비큐 치킨’ 15cm를 주문하려는데, 아르바이트 여 선생님이 그러셨다. “손님, 죄송한데요, 저희 양상추가 다 떨어져서요. 그래도 드시겠어요?” 하, 신선하고 시원한 양상추가 없는 써브웨이 샌드위치가 도대체 무슨 맛이람. “아뇨, 그냥 안 살게요.” 때로 사람은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불친절함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때로 그것을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운에 휩싸이기도 한다. 양상추가 없는 ‘로티세리 바비큐 치킨’은 반칙이잖우. 가격은 5,900원


* 프런트 이미지 출처: thefeelstudioi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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