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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27. 2020

많은 목소리가 있지만 결국 내 방식대로 살아가자는 것.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



나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라이프스타일이 좋다. 누가 뭐래도 사람의 스타일이라는 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내게 '에구구, 정말 더럽게 지루하게 사네! 시간 낭비야, 시간 낭비! 으휴, 끔찍해!'라고 욕하여도 그저 멋쩍을 뿐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학 시절만 해도 그렇다. 나는 나 홀로 때로는 불알친구 한 두 명과 함께 때로는 여자 친구와 같이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쇼핑하고,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술을 진탕 마시면서 천장이 떨어져 나갈 듯 왁자지껄 떠든다거나 꼬질꼬질한 몰골을 한 채 배낭을 들쳐 메고 해외를 싸돌아다니며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교류하다가는 러닝만 입은 채로 술잔을 들고 되게 친한 척 입을 쫙 벌리고 즉석 사진을 찍는다거나 동아리나 클럽을 열심히 홍보하면서 신입생들을 붙들고 살갑게 말을 붙이는 식의 활동은 물론 신선하고 건강한 느낌이 들어서 보기에 좋았으나, 적어도 나에겐 대학 시절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고 듣기에 좋은 것과 내 성정에 잘 들어맞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니까. 대학생이라면 꼭 뭔가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무언가를 즐기면서 소란스럽게 떠들고, 생생한 기운을 내뿜어야 한다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싶은데, 그런 생각들에 눈치를 살살 보던 대학 시절이었다. 가뜩이나 쭈구린데.


쭈굴좌 박명수 선생님


근데 당시에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비슷한 학생들도 정말 많이 보였다. 언뜻 쭈굴쭈굴하고(?) 단조로워 보여도 나름대로 자기만의 충만한 삶의 방식을 이어나가며 행복을 찾던 친구들. 그들의 일부도 나처럼 가급적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솔직히 아무도 관심 없는데). 역시 사람은 어떻게든 감동하고 감동받을 일을 만들어 감동의 할당량을 채우며 산다. 어떤 사람이 막 나서거나 드러내지 않고 사는 건 다 그럴만한 인생의 재미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라면 무적권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면서 이런저런 청춘 페스티벌이나 강연 자리에 참석해서 은근한 압력을 넣던 인플루언서들의 매콤한 조언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여행이 귀찮고 피곤한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인생을 허투루 또는 잘못 사는 게 절대 아니다. 여행이 귀찮고 피곤한 대학생도 어딘가엔 분명히 있다. 지루한 삶이라며 욕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건 그저 여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일 뿐이다.


대학 생활의 꽃은 '연애'라면서 무적권 많은 이성을 만나봐야 한다던 인플루언서들의 달달한 조언도 생각난다. '두 사람의 역사'일뿐인 '연애'에 관해 제삼자가 뭐 그리 할 말이 많은 건지 참 신기했다. 오직 두 사람 사이의 비밀을 몰래 훔쳐보며 훈수를 둘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영매에 가까운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연애좌 김제동 선생님


작금의 유튜브 열풍을 떠올려본다. 옛날에 공자 선생님께서는 “빈둥거릴 시간에 바둑이라도 두어라!”라고 일갈했다던데, 공 선생님께서 여태껏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빈둥거릴 시간에 영상이라도 찍어 올려라!”라며 귓방망이를 몇 대 후리셨을 것이다. 어떤 영상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고, 또 얼마나 큰돈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나처럼 때늦어 블로그 글쓰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솔직히 불안하다. 물론 커리어 성장이나 부동산, 주식 등에 관한 글쓰기로 책을 내고, 인세를 두둑이 챙기는 선생님들도 계시기에 사실 내 불안감은 그것의 딱 반만 그럴듯하다. 저렇게 ‘잘 팔리는’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폼을 잡을 수 있는 이력을 쌓고,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분들을 보면 확실히 시대의 흐름에 잘 올라타는 것도 엄청난 실력과 기술인 듯하다. 자주 부럽고 때로 존경스럽다. 하지만 내가 그분들을 흉내 낼 순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물론 자신을 바꿔볼 순 있겠지만 그곳은 이미 관련 이야기가 충분한 곳이 아니던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을까. 앞선 문단을 다시 읽어보니까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서 이번 글쓰기를 시작한 듯하다. 확실히 일해라 절해라 말도 많고, 잘난 선생님들도 워낙 많은 시대인지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즐기고, 내 식대로 인생을 주무르며 살아가다가도 왈칵 주눅이 들곤 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 세상의 다양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우린 우리 스타일대로 우리만의 것들을 쭉 밀고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꽤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닐까.


이 세상엔 정말 많은 목소리가 있지만 결국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건강하고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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