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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Dec 31. 2020

본격 흑인 자긍심 고취 패션 브랜드

커비 진 레이먼드의 PYER MOSS 피어 모스


 

나의 영향력을 남을 위해 예쁘게 사용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로 상처 받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훈련소 입소 첫날의 퀴퀴한 담요처럼 불편하고 껄끄러운 이슈일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품을 수 있는 건 또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미국의 패션 브랜드 ‘PYER MOSS 피어 모스’의 ‘Kerby Jean-Raymond 커비 진 레이먼드’는 진정 아름답고 기특하며 용기 있는 사람이다. 줄여서 아기용 혹은 름특기.



KERBY JEAN-RAYMOND (esquireme)


 

커비 진 레이먼드의 피어 모스는 목적의식이 분명한 패션 브랜드다. 그것은 곧 흑인 인권 신장과 인간 평등이다. 또 패션 디자인과 런웨이 쇼에 담긴 의미가 워낙 풍부하다 보니 스토리텔링으로 승부 보겠다는 브랜드이며, 정치적인 브랜드를 지향하진 않지만 자기주장이 워낙 강해서 결국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브랜드다.



화이트 부츠의 몸통에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한 흑인 남성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PYER MOSS 2015)




2014년, 뉴욕 경찰의 초크로 질식사한 흑인 Eric Garner의 "I Can't Breath"가 떠오른다. (PYER MOSS 2015)




Spring 2018 컬렉션의 화이트 티셔츠, "STOP CALLING 911 ON THE CULTURE"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Teen Vogue)


 


패션과 액티비즘의 중간 지점에 빈자리가 하나 있다면 거긴 피어 모스의 자리이니까 양보 좀 부탁드린다.




예림이, 그 패션 봐봐!
혹시 액티비즘이야?

패션 건들지 마!
손모가지 날아가 붕게!


 



PYER MOSS and Anna Wintour (TWITTER)




피어 모스의 런웨이 쇼는 마치 #BlackLivesMatter 운동의 예술 무대처럼 느껴진다. 그곳에선 블랙 아메리칸 내러티브가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 노래가 있고 미술이 있으며 영상이 있고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는 식이다. 백인 경찰 과잉 진압의 피해자 가족들을 쇼의 맨 앞줄에 초청해 그들을 위로하는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선사하기도 하고, 빵빵한 성가대가 블랙 파워를 드러내는 음악을 짱짱하게 부르며 무대를 더욱 빛내기도 한다. 이에 질세라 시인, 래퍼, 소울 뮤지션 등도 등판해 피어 모스의 스토리텔링에 가담한다. 경찰의 잔인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화이트 워시 되어 잊힌 흑인 카우보이 이야기, 그리고 옛 노예 제도 스토리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Racism Video가 흐르는 PYER MOSS 패션쇼 현장 (nytimes)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야? (documentjournal)




PYER MOSS 2020 SPRING




피어 모스의 창업자 커비 진 레이먼드는 자신을 ‘증폭기’라고 말한다. 모두가 쉬쉬하지만 반드시 논의되어야만 하는 불편한 현실 이야기를 끄집어내 ‘패션’이라는 미디어 속에 녹여 크고 널리 전달하는 증폭기 말이다. 사회(업계)의 불공정, 조직적인 인종 차별주의, 경찰 권력의 잔인성 등을 그는 대놓고 저격한다.


커비 진 레이먼드는 말한다. 자신은 패션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할 뿐이라고. 당신이 톨스토이야?


 


이 형도 슈퍼카는 못 참지. (COMPLEX)


 



그의 스토리텔링은 뜻밖이지만 적시여서 매력적이다. 그래서 그는 트렌디한, 쿨한, 스트리트 스타일의 브랜드라는 수식어를 싫어한다. 대신 그는 정신적인 패션 브랜드라는 말을 듣기 좋아한다.


 

피어 모스의 스타일은 창업자의 마인드처럼 볼드 하고, 브랜드가 건네는 다채로운 이야기처럼 컬러풀하며, 그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정치적 숙제처럼 난해하고, 우리가 밟고  현실 세계처럼 불완전하다(물론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소매, 뒤틀린 패디드 재킷, 거대한 라펠의 오버 코트처럼).


그럼에도 브랜드의 목표는 뚜렷하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것은 곧 흑인 자긍심 고취와 인간 평등, 그리고 다양성의 인정이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피어 모스를 둘러싼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게 창업자 커비 진 레이먼드의 꿈이란다.





S/S 2017 PYER MOSS "COME SHAKE THE MONEY TREE" (tag-walk)




아이티에서 이민 온 창업자 아버지의 영주권 그린카드 사진을 티셔츠 위에 담았다. (2017 PYER MOSS)





F/W 2017 PYER MOSS (hypebeast)





PYER MOSS의 FALL 2018 블랙 카우보이 캠페인 (FASHIONISTA)




우린 누구도 배척하지 않아요.
백인에겐 흑인이 필요하고,
흑인에겐 백인이 필요하죠.

우리에겐 모두 서로가 필요해요.

다만 흑인의 자존감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장사합니다.
그게 다예요.

-동양인 배척좌 커비-
 




천천히 인정받길 원해요.
커뮤니티원을 모으는 겁니다.

-공동체좌 커비-





피어 모스의 창업자 ‘커비 진 레이먼드’는 아이티 공화국 출신의 두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생활하며 십 대 초반부터 신발 디자이너의 꿈을 꾸었고, 이에 따라 패션 고등학교에 진학해 어린 나이부터 Kay Unger 등의 브랜드에서 인턴 경험을 쌓았다. 여세를 몰아 그는 2013년 자신의 브랜드 ‘PYER MOSS’를 설립했는데, 경찰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은 2015년 뉴욕 패션 위크 쇼를 통해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또한 그는 리복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실험하는 리복의 사내 벤처 ‘Reebok Studies’의 아트 디렉터로 활약 중이기도 한데, 피어 모스가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간 것은 사실 피어 모스와 리복의 컬래버레이션이 큰 몫하였다.



 

Reebok by PYER MOSS Trail Fury, 말을 타고 있는 흑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올려다봐야 하듯이 신발의 굽을 높였단다.



래퍼 카니예 웨스트나 팝스타 리한나와 계약해서 디자이너로 뜨는 방법이라든가 미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위해 밟아야만 하는 어떤 전형적인 절차라는 게 분명 존재하고, 그것을 몇 년이나 따라 해 봤지만 결국엔 모두 자신과는 맞지 않아 나만의 길을 개척해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는 커비 진 레이먼드. 그만의 길, 그것은 아마도 정치와 사회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불같은 개인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업에 적용시킨 부분일 것이다.



그 어떤 문도 제겐 열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문을 직접 만들어야만 했어요.

-도어맨 커비-



그리고 분명 그 중심에는 패션을 둘러싼 ‘이야기’의 매력이 있다. 반복하여 말하자면 그는 스타일 재능과 패션의 핏보다 스토리와 콘텍스트를 중시하는 디자이너다. 의미 없는 옷은 안 만든다고, 패션은 스토리텔링의 도구일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당신이 이솝이야?


남들을 따라 하는 건 한계가 있고 성공의 방식은 하나가 아니라는 걸 절감한다. 감사합니다.




피어 모스의 80%는 스토리텔링,
20%가 상품입니다.

-2:8좌 커비 진 레이먼드-


 



PYER MOSS S/S 2019 (Culture Type)


요 며칠 'PYER MOSS'에 꽂혀서 관련 인터뷰와 영상을 찾아보면서 세밑의 여유시간을 즐겁게 활용했다. 피어 모스라는 브랜드를 보고 있노라면 ‘종합 예술’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라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수족냉증이 있어서 그런지 손과 발 대신 가슴이 자주 불타기 때문일 것이다.


형, 래퍼야? (FASHIONISTA)


패션 매거진의 어떤 브랜드 소개 기사나 디자이너의 인터뷰 기사를 쭉 읽고 나면, 그들의 ‘옷’이 그냥 ‘옷’으로는 안 보이고 ‘이야기’나 ‘철학’으로 보이는 꽤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성경과 불교 경전을 ‘종교 서적’이 아닌 ‘문학’으로 받아들여 즐길 수도 있듯이 한 달에 한두 브랜드씩이라도, 패션 브랜드 소개 기사와 디자이너 인터뷰를 찾아보며 탐구한다면 ‘지루한 일상’이라는 답답한 방구석에 상쾌한 공기를 들이는 것처럼 훌륭한 ‘인사이트’를 적지 않게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혐오감을 극복하면
오히려 그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된다.”

-지드 <반도덕주의자> 중에서-


글 읽기가 귀찮은 선생님들을 위해 피어 모스 패션쇼 영상을 하나 첨부했으니 한번 감상해보길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ndZ6pY5790




* 프런트 이미지 출처: vo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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