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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an 17. 2021

제면기가 면을 뽑듯이 땀구멍에서 땀이 흘렀다.

"상책은 더위를 잊는 거야."



살면서 땀으로 정말 곤란하였던 일이 두 번 있는데, 그땐 정말이지 내 몸속 어디에서 그렇게 땀이 뿜어져 나오는지 스스로 알 수 없음에 대단히 야속해한 날들이었다.


하나는 군에서 막 제대하고 미국 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알아보기 위해 대학 본부의 한 사무실에 들렀을 때인데, 내가 2012년 9월에 제대를 했으니 아마도 당해 10월의 일로 기억한다.


내가 다녔던 대학은 언덕길이 제법 있는 편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내려 임박한 상담 약속 시간에 가까스로 맞추기 위해 대학 본부가 있는 곳을 향해 헐레벌떡 전력 질주한 것이 <2012 육수 샤워 사건>의 화근이었다.


아무튼 그날, 나는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 관련 상담을 받기 위해 한 여성 교직원 앞에 앉았는데, 착석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나의 이마 위에선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예삿일이라며 이마에 맺힌 땀을 손으로 몇 번 훔쳐내고는 그녀가 내 앞에 펼친 팸플릿에 집중하며 설명을 들으려 하는데, 두피의 땀구멍이 정말로 미쳐버린 모양인지 닫힐 생각을 안 하였다. 그리고는 쉴 새 없이 육수를 쭉쭉 뽑아 내렸다. 마치 국숫집 제면기가 토하듯이 밀어내는 면발의 지칠 줄 모르는 기세처럼.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댐 방류하듯 흐르는 땀방울을 한번 의식하고 나니까 그것은 더욱 그칠 줄을 모르고 강경한 태세로 쏟아 내렸고, 나의 얼굴을 뒤덮었다. 이후 교직원 선생님께서 나의 처절한 육수 사투를 목격하셨고, 티슈 여러 장을 내게 친히 건네주는 것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될 수 있었다.


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알아보러 대학교에 들른 것이지 샤워를 하기 위해 인천에서 서울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가며 방문한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나는 그날 제정신이 아니어서 교직원 선생님의 조곤조곤한 말씀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나는 졸업할 때까지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그 후회와 미련 그리고 안타까움은 아직까지도 한여름의 땀처럼 나를 찝찝하고 못살게 군다.









또 다른 경험은 2,3년 전 여름의 <미용실 죄인 사건>인데, 참고로 그날은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다. 헤어 커트를 위해 들른 단골 미용실의 에어컨 작동이 시원치 않아 소파에 앉아서 내 차례를 기다리던 중에도 이미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후 담당 선생님께 커트를 받기 위해 자리에 앉아 목을 조이는 덮개로 두 번 내 몸을 휘감고 나니 그때부터는 정말이지 더워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커트가 시작되었는데, 그날도 <2012 육수 샤워 사건>처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만 잠시 후에는 몇 년 전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이라도 하겠다는 듯 내 땀구멍은 야속하게도 육수를 쭉쭉 뽑아 내렸다. 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잠시 쉬었다가 커트를 재개해야겠다고 내게 말씀하셨고, 나는 군말 없이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 바람이나마 맞아보겠다며 에어컨 바람 직방 자리를 찾아 앉아 고개를 숙이고 땀에 젖은 머리를 말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에어컨에서는 미지근한 바람이 흘러나올 뿐이었고, 궁여지책으로 있는 대로 죄다 열어놓은 미용실 창문에서는 더운 열기가 기어들어와 기존 땀이 식기도 전에 새로운 땀을 만들어내었다.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 속의 데이지처럼 도끼를 가져와서 남은 창문이라도 어떻게 깨부숴야 하나 과격한 생각까지 하였지만, 상상은 역시 상상일 뿐이었고 땀을 잘 식히고는 커트를 재개하였다.




“다른 창문도 열어.”

데이지가 돌아보지도 않고
명령하듯 말했다.

“더 열 창문이 없어.”

“그럼 전화를 해서 도끼를 가져오라고 해.”

“상책은 더위를 잊는 거야.”

톰이 짜증 난 투로 말했다.

“덥다고 불평만 하니까
열 배는 더 덥게 느껴지잖아.”

소설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지금은 성인이 된 사촌 여동생이 어렸을 때 손바닥에 땀이 너무 많아서 고민을 했었다. 언젠가는 그것의 정도가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피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은 해당 증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인체의 신비일까, 생각과 의식의 영향일까. 상대의 아픔을 함부로 헤아리려 드는 건 역시 위험한 일이지만, 나는 앞선 두 사건과 사촌 여동생의 경험을 통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흘러내리는 땀이 얼마나 사람을 불편하고도 괴롭게 하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톰’은 덥다고 자꾸 징징대는 ‘데이지’에게 상책은 더위를 잊는 것이라면서 짜증스럽게 말하지만, 삶이 그리 간단한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땀구멍을 조절하는 건 내 의지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절대 아니지 않는가. 문송하여서 과학적으로 설명은 못 하겠지만. 그렇지만 또 나를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어떤 것에 대해 자꾸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지칠 줄 모르고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는 데에는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다. 젠장! 그러고 보니 결국 현실적인 상책은 잊는 것뿐이구나.


작년에 래퍼 PAUL WALL과 LIL KEKE가 그랬다. “Don’t Think About It”이라고. 아무튼 스눕피는 끼워넣기의 달인이니까.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행복한 밤, 고민과 걱정을 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힙합 음악이나 들으며 즐거웁시다. Don’t Think About It! 아, 또 땀나려고 하네;;;



2020년의 전설적 띵반, 강추! (이미지 출처: Houstonia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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