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에 찬 삶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인간은 영원히 어린애의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언젠가는 적의에 차 있는 삶 속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프로이트-
대학 시절에 한 광고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그때 나는 치사하게도 구경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그야말로 재미로 회사를 다녔다. 아침에는 신문을 나르고 음료수를 채우며 회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오후에는 클라이언트가 속한 산업군의 동향을 파악하라는 특명에 포털 사이트의 뉴스란을 구석구석 긁어 파면서 시간을 소모했다. 또 대학생의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한껏 발휘해보라며 던져 준 기획안 숙제에 그 어떤 기성세대보다 올드한 전략전술로 보답함으로써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여지없이 박살하던 스물다섯의 나날이었다.
당시 내가 속한 팀의 옆 팀 팀장님은 그 아래에 3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평화로워 보이던 그 팀에도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곧 3명의 부하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늘 '지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팀의 팀장님이 아랫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고, 3명의 부하는 그것에 힘입어 더욱더 지각을 강행하였다.
인턴 신분으로 잘할 줄 아는 거라곤 일찍 출근하는 것뿐인 '나'와 회사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축에 속하던 해당 팀장님은 언제부터인가 말하지 않아도 그저 바라보면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초코파이'의 '정' 같은 눈빛을 교환하게 되었고, 더욱이 나는 출근 시간이 다가오면 내심 오늘은 해당 팀의 팀원분들이 조금 일찍 출근하여 '민망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쓸데없는 오지랖까지 펼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예의 그 쿨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고 귀여운 꾸지람으로 팀원들의 지각에 대응하는 팀장님의 그 바보 같은 리액션을 훔쳐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분 참 어물어물한 것이 '나'같구먼!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역시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남의 입장까지 다 신경 쓰느라고 미리 '싫은 소리'의 구조를 잘 짜서 여러 차례 속으로 연습하는데 그러다 보면 한소리 하기도 전에 혼자 지쳐서 저 멀리 날아 떨어지곤 한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려다가 내가 시름시름 앓게 되는 것이다. 에구구~
이들은 전부 정이 많고 선량하지요.
왜냐하면 배부르고 걱정이 없으니까.
그래서 싸울 일도 없으니까......
그러나 저는 일과 삶의 필요로 인해
냉혹해진 사람들이 고뇌하며 사는
바로 그 커다랗고 습기 찬 집들이 좋아요.....
-체호프 단편선 중에서-
직장 또는 학교 등을 떠나는 입장에 서서 가끔 자기가 얼마나 '개'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는지에 대해 흡족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하는(그러면서 그들은 꼭 주변에 물어보라고 한다, 내 주변도 아닌데 어떻게 물어봐) 사람들을 보게 되면 양가감정을 느낀다. 체면을 차리지 않고 누군가에게 '개'처럼 굴 수 있었던 어떤 의미에서의 그 용기와 결단력은 내가 가지지 못한 성격과 태도를 높이 사거나 새롭고 기이하게 여기는 나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의 나는 저렇게 살 수 없을 거라며 기왕이면 싫은 소리를 피하여 애써 개인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는 나의 무디고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멍청한 삶의 방식에 동정표를 준다. 그렇게 열심히 만족하고 또 자위하는 것이다.
때로는 무언가를 하고 또 무슨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 일도 안 하고 또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지. 구태여 사나운 '개'처럼 살 필요야 없겠지만 아픈 곳을 치유하는 개념으로, 고장 난 곳을 고치는 개념으로, 삐뚤어진 곳을 바로잡는 개념으로 더 많은 '싫은 소리'와 친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른두 살의 깨달음이라기엔 참 순진하고 뒤늦다. 그놈 참 한심한 놈이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