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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ug 20. 2021

누군가 읽어주길 상상하며 글을 쓰는 일에 관하여

그렇게 래퍼 'Joonbug 준벅'을 만나기도 했다.




아무래도 나는 내 마음대로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 그럴 때의 나는 집의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혹은 동네 카페의 구석 자리 내벽에 찐따처럼 기대앉아 살살 주변 눈치를 보면서 글을 쓴다. 비록 글을 쓰는 내 모습은 이렇듯 흉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글을 막 쓰는 것만은 아니고 쓰고 싶은 주제에 관한 글을 노트에 기획하고 며칠 글감도 수집하는 등 나름의 체계를 갖추어 진행하고 있다. 나는 물론 회사에서도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것은 혼자 글을 쓸 때의 즐거움에 비할 바가 못되기에 말을 아끼기로 하겠다.


내가 혼자 어떤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가 쓴 글을 읽어볼 특정 독자 선생님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예비 독자를 상정하는 과정의 중심에 놓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런 사람들이 혹은 저런 사람들이
이 부분만은 꼭 읽어봐 줬으면 좋겠다.





딱히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과정은 아닌데 워낙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서 나도 자주 신기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이 뭔지 아는가? 생각보다 그것의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효과의 증명 방법은 굉장히 간단한데,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모습을 한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연락을 취해오는 걸 기다리다가 내 눈으로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미끼좌 강태공은 아니지만 말이다. (너무 거만한 자세인가?)


아무튼 내가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블로그 글쓰기를 꾸역꾸역 열심히 해나가는 이유는 바로 그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가는 일이 가끔 보잘것없이 느껴져 한없이 작아지는 내 인생을 꽤 만족스럽고 살맛 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해 나는 ‘준벅이라는 국내 래퍼와 처음으로 만났다. (갑자기 홍보야?) 그는 미국  학의 생물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의사를 준비하다가 ‘힙합 끌어당김에 굴복해 래퍼가 되기 위해 얼마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매주  곡씩 음원을 발표한다고도 말하였다. 실제로 만난 그는 시종일관 겸손했고 자신감에 가득했으며  허튼소리도 마치 대단한 이야기처럼 감사히 경청해주었다. 버릇없이 떽떽거리는 태도가 쿨한 것이라 착각하거나 돈만 많이   있다면 어떤 개소리를 늘어놓아도 괜찮다는 자세로 쏘아대며 오직 ‘한탕만을 노리거나 혹은 인생철학의 빈곤함을 화려한 패션 센스로 갈음하려는, 내가 대놓고 경멸하는 ‘힙합 잘못 이해한 어떤 MZ세대 국내 래퍼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의 매력에 나는  빠져버렸고, 나보다 어린 그를 여러 면으로 존경하며 아직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We gon’ make it higher
내 곁에 서준 모두 될 거야 우린 선두
Cause I ain’t gonna lie to y’all
I ain’t me without y’all


내면의 소린
두 말이 필요 없어 잘 들어

건배하려면
두 잔이 필요하니 잔 들어


요란한 항아리 속 든 게
몇 개 없어 동전

깊이 없는 trend
I’ma bring it back the 고전

난 내 뜻 없이
누가 시킨다고 안 해 조절
죽어도 흔들리지 않아
뚜렷한 내 초점

Trust me
we gon' make it happen

- Joonbug
<We Gon' Make It Higher> 중에서




그를 힙합의 세계로 인도한 미국 래퍼 ‘Russ 러스’에 관해 내가 작년에 끄적인 글이 하나 있는데, 그는 우연히 그것을 찾아 읽고 내게 연락을 취했다고 했다. 직접 만나 들어보니 그는 래퍼 러스의 가사를 ‘인생의 화두’로 설정하고 몸에 새기기까지 할 정도로 열성적인 팬이었는데, 덕분에 나는 참 머쓱하고 한편으로 죄송하였다. 뭐랄까, 배우 이병헌 선생님 앞에서 ‘내일, 너, 로맨틱, 성공적’에 관해 아는 체하며 늘어놓는 어떤 사랑 초보의 ‘연애학개론’ 같았달까?




https://brunch.co.kr/@0to1hunnit/242




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마치 세상을 다 아는 척 이런저런 글을 마구 싸지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가지 생각만은 조금도 바뀌지 않고 도리어 점점 더 분명하고 확실해지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세상은 무지하게 넓고 나보다 더 멋진,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항상 조심하고 겸손하게 살면서 그들로부터 자주 배우고 가끔씩이라도 성장 좀 하자는 것.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스눕피의 브런치> 메인 페이지의 [기타 이력 및 포트폴리오] 란에 적어 넣을 말이 궁색하여 빈 공간을 메우고자 집어넣어 놓기도 했는데, 미국의 시인 '월터 휘트먼'의 말씀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The gift is to the giver,
and comes back most to him
- it cannot fail.

- Walt Whitman




선물은 다시 주는 사람에게로 돌아간다는 것,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불만, 잡념 등을 걷어내는 실로 위대한 한 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래퍼 준벅 선생님처럼 좋은 사람을 만날 때면 휘트먼의 저 버릴 것 하나 없는 문장에 대한 확신이 더욱 짙어진다.


내게 온라인 글쓰기는 나름의 치열한 노후 준비와도 같다. 물론 언젠가 내가 쓴 글이 돈이 되어 돌아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보다 여기저기 씨를 뿌리며 잠재적으로(?) 좋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노후 준비라는 말이다. 관련하여 언젠가 직업이 무어냐고 누군가 내게 물을 때 '블로거'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글의 밀도와 재미를 높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할 생각이다. 아무리 조회수가 마려워도 스티커 이모티콘을 덕지덕지 붙이다가는 <그럼 다음에 알아보아요!>라며 마무리하는 식의 무책임한 정보성 포스팅이나 '팩트 폭행식 동기 부여'를 내세우는 내로남불 인생/커리어 쓴소리 포스팅, <국민 MC 유재석, 충격적인 소식 전했다>는 식의 슈퍼 어그로성 포스팅 등은 앞으로도 최대한 지양하면서 말이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멋진 누군가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며 잠재적(?) 독자를 상정하고 또 여러 가지 글을 되는대로 끄적여볼 것이다. 자, 씨를 뿌릴 시간이야!



(이미지 출처: 알 수 없음)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잠재적 독자가 되는 거야!

-페미니스트 손날좌를 위협하는
에세이스트 스눕좌-





* 중간에 소개한 래퍼 '준벅' 선생님의 음원 링크를 아래에 남깁니다.


https://youtu.be/vvP_pzG5W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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