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눕피 Nov 06. 2021

마지막 문단에 이르러서야 음악을 추천하는 글

H-Town Ice Man, Paul Wall Baby!



내가 당연히 알고 있는 정보가 누군가에겐 금시초문이며 그것을 전하고 받으면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나에게 언제나 희망을 선물해준다. 나의 하잘것없는 단상이 누군가의 심심한 시간을 때워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이 공간에 머무를 때 마음이 정말 편해진다. 잠깐이나마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나만의 동굴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니까.







무언가에 질질 끌려가듯이 평일을 보내고 멍하니 주말을 지낸 한 해였다. 며칠 전에야 2021년도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퍼뜩 깨달았을 정도다. 그럼에도 신보를 챙겨 들으며 미국 힙합 트렌드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쓸데없는 강박만은 징하고 징해서 건대입구역의 에스컬레이터와 선릉역의 계단을 아침엔 오르고 밤엔 내려가며 래퍼 Big Sean과 프로듀서 Hit-Boy가 함께한 EP <What You Expect>, Young Thug의 두 번째 정규 앨범 <Punk>를 한 바퀴 돌리고 또 두 바퀴 돌리는 나를 발견했다. 갑자기 친구에게 '다생미래'라는 카톡 메시지를 미친 사람처럼 툭 던지기도 하면서.





 다(음)
생(에는)
미(국)
래(퍼로)




답변의 가치가 없었던지 그는 내 카톡을 읽씹했다.




"다생미래!"를 절로 외치게 하는 두 신보, 빅션과 힛보이 그리고 영 떡의 멋진 앨범에 치-한다.





지난 주말에는 내 카톡을 읽씹한 그 친구와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 들렀다. 와이드 팬츠에 나이키 덩크 로우를 조합한 남자들이 많이 보였고, 아이비리그 컷을 한 남자들이 많이 보였으며, 다소 작은 크기의 블랙 크로스 백이나 다소 큰 크기의 블랙 뿔테 안경으로 스타일링 포인트를 준 남자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유행이란 것은 참 강력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나저나 한 20년 전부터 '나이키 덩크 로우'를 즐기며 수집하던 스니커헤드 선생님들은 작금의 덩크 로우 공습경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오래도록 외롭던 차에 정말이지 잘 된 일일까, 오래도록 독점하던 포지션을 위협받아 무척이나 슬픈 일일까. 아무튼 이게 다 트래비스 스캇 때문이야!




Ye가 여기저기 떠벌린 망상적 꿈을 현실로 바꾼 인물이라면 Travis Scott은 막 소란을 떨다 보니 어이쿠, 하며 아이콘이 된 인물이 아닐까.




힙합 음악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는 이들에겐 '휴스턴 출신 래퍼'라고 하면 역시나 '트래비스 스캇'이나 '돈 톨리버'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설의 Bun B나 Scarface, Slim thug이나 흑인 래퍼보다 더 맛깔나는 백인 래퍼 Paul Wall이 먼저 떠오른다. 특히 Paul Wall은 기분이 다운돼 꿀꿀할 때나 아무 이유 없이 괜스레 멋진 기분을 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그의 반짝이는 그릴즈와 다이아몬드 액세서리, 크롬 래핑 레드 캐딜락의 폭발하는 간지 그리고 잔뜩 취한 듯한 신스와 띵한 오르간, 으르렁 거리는 베이스가 일품인 더티 사우스 뮤직의 신비한 조합은 느낌을 아는 멀쩡한 선생님이라면 참기가 힘들 것이다. 못 참지, 못 참아! H-Town, Paul Wall Baby! 나는 일관성 있는 사람이 좋다. 그의 패션과 자동차, 음악은 일관성의 끝을 달린다.




흑인 와이프와 결혼한 흑인보다 더 흑인 같은 백인 래퍼 'Paul Wall', 그의 별명은 '아이스 맨'이다. 참고로 이정용의 '아이스 맨' 아니다.




2005년에 발매한 그의 정규 1집 앨범 <THE PEOPLES CHAMP>는 정말 괜찮은 앨범이라서 스눕피가 강력히 추천한다. 그다지 공신력은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앨범의 수록곡 몇 개를 추천해보자면 'Ridin' Dirty'는 야밤의 신나는 드라이브에 제격일 테고, 'So Many Diamonds'는 빡센 웨이트 트레이닝에 제격일 것이며, 'Girl'은 사랑하는 애인을 집에 데려다주고는 나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그녀의 소중함을 빡세게 되새기며 '사랑한다'는 깜짝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기에 아주 좋을 것이다.


내가 쓴 어떤 글에선가 Paul Wall과 Lil Keke가 함께한 앨범 하나를 추천한 걸로 아는데 어떤 포스트였는지 당장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이것은 두 번째 추천의 글인 셈이다.




칸예와 함께한 곡 'Drive Slow' 또한 정말 일품이다. 같은 해에 발매한 Ye의 <late registration>에도 함께 수록된 곡이기도 하다. 아무튼 함께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와 음악 감상은 100% 감정적 체험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