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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Dec 10. 2021

간만에 찾아온 스눕피의 단상

스눕좌, 다소 진지해져 버리다.



2002년의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은 학교 대항 친선 축구 경기가 열린 날이었고 나는 인천의 한 중학교 운동장 외곽 끄트머리에 병렬한 서너 개의 철봉 주변을 맴돌면서 한겨울 찬바람에 두 볼이 시뻘게진 친구들의 열성적인 뜀박질을 열렬히 구경했다. 응원이 아니고? 구경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열없는 성격은 이 모양 이 꼴이었으니까.


그때 내 주변엔 서너 명의 친구가 더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는 친하지 않았다. 그들도 우리 학교 학생이었으나 얼굴만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들도 나처럼 우리 학교 애들을 응원하러 온 모양이었는데, 나는 그 공간을 그들과 함께 점유하고 있는 그 순간이 그토록 멋쩍어서 별 시답잖은 농담이나 뱉어냈다. 그리고 막 실없이 웃었다. 여기까진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어떤 말을 어떻게 내뱉었던 건지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기억이 나는 것도 좀 이상한 게 아닌가 싶고?


그날 나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해진 친구들 중 하나는 이후 20년의 세월을 나와 함께 돌파했다.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의 감정을 웬만큼 함께 공유하며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무 살의 언저리, 친구 집이 파산했을 때 나는 마치 내 일처럼 아팠고, 서른 살의 언저리, 친구가 집을 샀을 때 나는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돌아보니 한 팀을 응원하며 뭉쳤던 우리의 순수했던 첫 만남의 성격이 한 길을 걸어가며 뭉쳐 온 우리의 우정 길을 곧게 내어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인생의 모든 만남이 운명적이란 걸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내가 체계를 갖춘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날 이후로 나는 역설적으로 운명적인 만남이 이끄는 다소 복잡한 길의 끝에 설 완전무결한 상태를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그저 순수한 바람이어도 대체 어찌 대처할 방도가 없는 희망이어도.


 세상의 모든 만남은 어처구니없이 쉽게 이뤄지지지만 그것이 부드럽게 지속되고 아름답게 꽃피기 위해선 골수에 사무치는 고통이 수반된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를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 관련하여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루 적당히 친한 사람은 많아도 깊이 친한 사람은 많지 않은 나의 인생은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모양  꼴인 것이다.


오케이, 너무 진지하니까 이제 그만!


아까 아마존 트위치 채널에서 칸예와 드레이크의 무료 자선 콘서트 생중계를 지켜봤다. 너무나 행복했다. 아무래도 이번 주와 다음 주는 내 사랑 칸예의 음악을 다시 한번 집중해 들어야만 할 것 같다. 그들이 오늘 또 식어버린 내 힙합 심장에 불을 지폈다. 활활~ 오늘은 기분이 무척이나 싱숭생숭해서 칸예의 'Everything We Need'가 너무나도 맛있게 들리는군요. 맛있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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