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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Dec 11. 2021

"그녀가 알아보기 편하게끔 표시를 잔뜩 해두었다."

내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건 언제나 힙합 음악이었다.



여고 시절에,
상사들에게 불려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온 아버지가 잠이 들면,

나는 아버지가 잠자는 동안
아버지의 의식이 멈추어서

세상과 관련이 없는
격리 상태에 빠진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중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녀)가 지금 이 순간 괴로움을 겪지 않았으면 하곤 발을 동동 구르는 것, 마침내 그(녀)가 괴로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이 관심 있는 것들보다
알리사가 좋아할 만한
내용을 우선시하여

내가 좋아하는 책에
그녀가 알아보기 편하게끔
표시를 잔뜩 해두었다.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중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나의 관심사보다는 그(녀)의 관심사를 우선하게 되는 것, 그러면서 조금도 내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 내친김에 내 삶을 낭비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드는 것.


하지만 이렇듯 책 속의 문장을 너무 맹신하고 까불면, 특히 ‘문학’에 너무 심취하면, 삶을 지나치게 각색하게 된다. 그래서 늘 드라마 같은 삶을 꿈꾸는 것이다. 모방에 의한 창의성 정도로만 멈추어 준다면 좋으련만, 인간은 언제나 부작용에 취약하다.




실제로 내 친구의 어머니는 유명 소설가인데, 어느 날 친구의 어머니가 친구에게 그랬단다.


소설을 많이 읽어서 좋을 게 없다”라고, “소설을 많이 읽으면 사람이 이상해진다”라고. 여기요, 여기! 미친놈 잡아가요! 스눕좌!


어린 시절부터 소설을 즐겨 읽은 내가 그 증명이 되는 듯하여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물론 친구 어머님의 말씀이 원 헌드레드 퍼센트 진심은 아니셨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건 언제나 ‘힙합’이다. 현실의 사랑을 정의하고 싶다면 역시 ‘힙합’만 한 게 없다.


2PAC의 <Do For Love>와 함께 나는 오늘도 각박한 이 현실 속 뜨거운 사랑을 배운다. 에고고, 치한다! 치해!


"Just when I thought I broke away and I'm feelin happy"

헤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기분이 쾌했는데,


"You try to trap me say you pregnant and guess who the daddy"

넌 임신했다고, 아빠가 누굴 거 같냐며 나를 옥죄려 애쓰지.


"Don't wanna fall for it, but in this case what could I do? So now I'm back"

속고 싶지 않아, 근데 이 상황에 뭐 어떡하겠니? 그래서 돌아온 겨.


"To makin promises to you, tryin to keep it true"

약속 지켜야지, 진또배기 실천해야지.


- 2PAC <Do For Lov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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