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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Mar 08. 2022

와이드 팬츠가 만연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스눕피의 조금도 못 미더운 패션 단상 에피소드 2



패션 디자이너 '윌리 차바리아'의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소개하며 작금의 '와이드 팬츠' 열풍에 대해 끄적인 일이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맨 아래 링크를 걸어두겠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관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에 부는 '와이드 레그 팬츠' 열풍에 대해 또 한 번 떠들어볼까 합니다(사실 상당히 허무합니다).


얼마 전에 미국의 저스틴 비버 씨가 JNCO의 와이드 카고 팬츠를 입고 나왔는데 그것이 참 보기 좋아서 이미지를 스크랩해두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알던 그 JNCO가 맞나? 싶기도 했습니다.



완벽해!




제 나이가 올해로 서른셋인데, 형누나들 덕에 90년대의 패션깨나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저는 철없는 잼민이였지만 주워듣고 보고 들은 패션 브랜드가 한 트럭이었고, 그것을 밑천 삼아 세기말을 꺾고 신세기로 들어와서는 SPORT REPLAY, FUBU, MF, KARLKANI를 즐겨 입으며 무려 초등 고학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가하면서도 화려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땐 미친 바지통만큼 마음도 넉넉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잘아졌습니다. 아무튼 요즘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포켓몬 빵 스티커에 열광하던 잼민이 1세대가 바로 저인데, 그때 어떤 인생 선배님들은 JNCO의 청바지를 입고 부지런히 번화가를 누비셨을 겁니다. 존경합니다.



여러분은 'Phat Pants'를 알고 계신지요? 'Phat Pants'는 핏한 허리 라인과는 대조적으로 그 아래로 내려가면서 넓게 퍼지는 나팔형의 와이드 팬츠를 말하는데요, 앞서 언급한 JNCO는 사실 90년대 'Phat Pants'의 대표 메이커였습니다.




개좋다!




JNCO는 프랑스에서 청바지 사업을 하던 두 창업자가 미국 LA의 스트리트 문화 그리고 그 패션에 푹 빠져 아예 거처를 옮겨 LA에서 창립한 패션 브랜드입니다. 그들이 브랜드를 창립할 무렵인 80년대 중반에는 스키니, 슬림 진 열풍이 대단했던 모양인데, 그들이 길거리에서 만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와 스케이트 보더들의 소지품을 담기에 그것들(스키니와 슬림 진)은 조금도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은 왕 포켓을 만들기 위해 바지를 큼직하게 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결국 만들어냅니다. JNCO의 백 포켓은 거대하였고 그 위에는 브랜드 설립의 원천 아이디어를 제공한 그라피티 아티스트의 그라피티 아트가 자수로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How To Mop




JNCO의 와이드 팬츠는 또 다른 곳에 가서도 활활 불붙었습니다. 바로 광란의 90년대 '레이브 파티' 현장에서였죠. 정신 사나운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에 맞춰 창고나 클럽 등에서 벌어졌던 환각의(?) 댄스파티였던 '레이브', Phat Pants는 그곳 사람들, 즉 레이브 커뮤니티의 상징과도 같은 옷이었습니다. 두꺼운 다리를 감추기 위해, 소지품을 넉넉히 담기 위한 큰 주머니가 필요해서, 춤 동작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자유롭게 춤추기 위해서, 미끄러지듯이 춤을 잘 추게 보이는 시각적 환영을 노리기 위해서 등 다양한 목적 아래 JNCO의 벨 보텀 식 와이드 레그 팬츠는 파티 피플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Dance with us?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미학적 세련성은 부족해도 그 나름의 기능성과 합리성을 잘 갖춘 다소 익스트림한 패션 스타일이 특정 서브 컬처 구성원으로부터 사랑받고 나면 시간의 문제일 뿐 유스 패션의 트렌드로 그것들이 격상되는 것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참 신기하죠. 그것은 이름 난 매거진에서 이것이 올해의 패션 트렌드라고 트렌드라고, 외우라고 외우라고 자꾸 외친다한들 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화 <프리즌> 속 한석규 배우의 대사를 여기서 바로 인용하자면 "그만하시지요."



That's Enough.




오래전에는 소지품을 적게 들고 다니거나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경제적 여유나 사회적 위치를 말해주었습니다. 나의 짐을 대신 들고 다니는 어떤 이의 존재를 은근히 증명해 주는 제스처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죠. 지금은 누구나 꼭 필요한 것들만 들고 다닐 수 있는 자유가 생겼고 보여주기를 위해 실용성을 포기하는 멋도 챙기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주머니가 넉넉한 와이드 팬츠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제 소견은 그렇습니다. 가장 풍성한 일상을 연출할수록 그 존재 가치가 배가 되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선생님들의 삶의 무대를 가장 풍부하게 극대화해주는 비주얼 아이덴티티가 단연코 '와이드 팬츠'가 된 것 같다고요. 우리의 매일 아침과 함께하는 인스타그램의 하단 돋보기 버튼을 클릭해보세요. 혹시 뭐가 보이세요? 제 피드에는 온통 '와이드 팬츠'만 보입니다. 새로고침도 해봤어요. '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의 의미가 조금은 선명해지는 기분이 드는군요.



[비슷하지만 다른 영양가 없는 글 소개]

https://brunch.co.kr/@0to1hunnit/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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