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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pr 27. 2023

빈티지 패브릭으로 빚어낸 극강의 패션 크리에이티브

역사와 스토리를 존중하는 디자이너 에밀리 보디의 패션 실험 'BODE'



BODE 보디


개인과 가정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든 때 묻은 빈티지 패브릭의 내재된 가치를 활용해 새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그래서 그녀의 디자인에서는 곧 향수가 느껴진다. 남보다는 나, 밖보다는 안으로부터 스토리를 빌려와 천천히 수공예 하듯 컬렉션 의상을 빚어내고 소란 없이 퍼뜨리는 디자이너, 그래서 그녀의 브랜드는 은은하게 오래가는 향수를 닮았다.


오래된 아이템을 모으고 전시하던 개인적 일상의 반복은 결국 비즈니스 성공의 근간이 되었고, 인간관계와 공부에 진심이었던 나날이 모여 브랜드의 알맹이를 채워 넣었다.


관점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패션 디자이너 Emily Adams Bode 그리고 그녀가 2016년 7월 설립한 뉴욕 베이스의 패션 브랜드 'BODE'의 이야기다.




Emily Adams Bode (이미지 출처: pinterest)



빈티지 스토리텔링


진부하디 진부한 '패션 스토리텔링'의 시대에서 에밀리 보디는 오래된 재료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절로 떠들도록 하는 신선한 전략을 활용했다. 학벌 세탁처럼 만연하는 '패션 그린 워싱'의 시대에서 그녀는 태생이 지속 가능한 것을 나더러 어쩌냐는 당위적 제스처로 계산이 필요 없는 브랜드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런 식으로 작고 힘들게 운영하면 한계가 분명해서 분명히 말아먹는다는 멘토들의 걱정을 묻고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에 더블로 집중하면서 천천히 브랜드의 내실을 다져 올리면 보다 더 영리한 방향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음도 증명했다.




보디의 시그니처는 단연 예술 같은 패치워크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




에밀리 떡잎 보디


에밀리 보디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는 골동품 수집가였던 할아버지와 그의 영향으로 플리 마켓, 앤티크 스토어, 박람회, 경매장 등을 누비던 어머니, 이모들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도 1800년대의 인형에 푹 빠져 지냈다는 그녀의 떡잎이란 정말 끝내준다. 또한 매사추세츠 주 출신인 부모님을 따라 매년 케이프 코드에서 여름을 보내던 그녀의 감성 충전 경험은 'BODE'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는데, 고향 집에 얽힌 어머니의 유년기 추억은 훗날 딸의 첫 번째 패션 컬렉션의 소재가 된다.





Bode Spring 2018 Menswear (이미지 출처: vogue.com)




낭만적 시작점



제가 만든 옷을 통해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연결되길 바랍니다.




이후 그녀는 1년 정도 스위스에서 시간을 보낸 후 뉴욕으로 건너 가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는 '맨즈웨어 디자인'을, 유진 랑 칼리지에서는 '철학'을 이중 전공한다.


재학 시절에는 '랄프 로렌'과 '마크 제이콥스'에서 인턴 생활을 하기도 하는데, 특히 빈티지 레더, 아플리케, 비딩, 프린지 등을 줄곧 다루면서 그것들이 컬렉션 의상 속으로 스며드는 랄프 로렌 러프 웨어 파트에서의 경험을 통해 상업적 빈티지 패션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을 키운다.


여러 잡 오퍼를 뿌리치고 결국 이중 전공을 완수한 그녀는 스타일링이나 바잉 등의 프리랜스 업무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해 이후 개인 브랜드 론칭을 준비한다. 그러던 중 뉴욕 타임스 T 매거진의 한 작가가 매거진 기사를 준비하며 에밀리 보디가 직접 찍은 사진 속 그녀의 작업물을 우연히 보고 맨즈 마켓 위크를 즈음한 남성복 브랜드 론칭을 권유하게 되는데, 그녀는 이러한 BODE의 시작점을 우연이 인연이 된 것이라며 낭만적으로 회고한다.





Bode Fall 2018 Menswear (이미지 출처: vogue.com)



진짜 특별한 재료


무려 빅토리아 시대의 퀼트, 1920년대의 리넨, 테리 클로스, 미국 퀘이커 사의 레이스 테이블 보, 손수건, 침대 덮개, 담요, 배지, 삼각기, 기모노 자수 등 에밀리 보디의 빈티지/데드 스톡 패브릭 아카이브는 깊이 있고 다채롭다. 그리고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개별적인 역사와 고유의 스토리를 지니는데, 그녀는 이러한 소재에 수공예 의상 제작 기법을 접목해 브랜드 창립 초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템들을 만들어냈다. 다만 그것들이 현대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정을 거칠 수 있도록 했다.





Bode Spriing 2019 Menswear (이미지 출처: vogue.com)




의미 있는 변화와 유행



아카이빙이란 개념은
BODE의 큰 부분을 차지해요.



그녀는 시간의 세례를 받은 재료의 역사적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그 기억을 현대로 잇고 수공예 전통을 보전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브랜드 운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패션 산업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었다. 그것을 흉내 내는 글로벌 후배들도 많이 생겼다.


패션 산업은 보통 몇 치 앞을 바라보고 피곤하게 나아가는데 그녀는 지나도 한참 지난 케케묵은 과거의 소재를 2020년대로 끌고 와 그것들이 얼마나 매력적이며 어디까지 힙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옷에 묻은 얼룩을 생의 흔적이 담긴 하나의 스토리텔링의 가치로 해석하는 그녀, 그리고 그녀가 만든 전통향 패션 브랜드에 젊고 트렌디한 패션 피플이 환장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패션 브랜드의 유행과 인기는 대박이나 우연이 아니라 다수의 공감 위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보디의 재킷과 함께한 보디의 찐팬 해리 스타일스 (이미지 출처: POPSUGAR)



제이지도 보디를 피해갈 순 없나 보디? (이미지 출처: twitter)




좋아하고 잘하는 일


에밀리 보디는 뉴욕 패션 위크 맨즈에서 쇼를 연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녀는 남성복을 디자인한다.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복 디자인에 좀체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녀는 다른 사람, 특히 남자 친구들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는 것을 지켜보는 일로부터 더 큰 영감과 재미를 느낀단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정적인 목적으로 여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텍스타일을 수집하고 큐레이팅하여 박시하고 보이시한 실루엣을 자랑하는 전통의 워크웨어로 재탄생시키는 일은 BODE라는 브랜드의 융합적인 존재 의의이자 그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Bode Fall 2019 Menswear (이미지 출처: vogue.com)




왜 통하였느냐?



융통성과 자신감은 제 성공의 근간입니다.



BODE가 시장에서 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으냐는 질문에 에밀리 보디는 '감정적인' 울림을 주는 보디 컬렉션의 오래된 소재가 전달하는 '내러티브'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랜 가정집, 소꿉친구, 어린 시절의 여름 방학 등을 떠오르게 하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색감과 소재가 발산하는 자연스러운 이야기 말이다. 그녀는 사람들이 특정 옷을 구매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을 입고 밖에 나가기 위함이 아니라 매일 영감을 얻기 위해서일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Emily Bode와 그녀의 남편(인테리어 디자이너) Aaron Aujla이 함께 사는 아파트 내부 (이미지 출처: pinterest)




마케팅 아닌 마케팅


그녀의 브랜드는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일방통행 식으로 마케팅하거나, 자화자찬하지 않는다. BODE는 태생부터 이야깃거리, 정직성, 지속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빌트인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된 아름다움을 수집하는 삶을 산 디자이너 본인이 곧 브랜드이기 때문이고 거기엔 딱히 속임수가 들어앉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오랜 취향이 고스란히 밴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녀와 취향이 일치하며 마음도 맞는 이들이 계속 문을 두드리며 따라온다는 것은 마케팅 전략이나 전술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보디 옷 1벌을 사고 나서 이후 15벌을 연달아 구매했다는 어떤 고객을 인상 깊게 기억하며 내뱉는 그녀의 감탄도 그런 맥락의 일부일 것이다.




Bode Spring 2020 Menswear (이미지 출처: vogue.com)




슬로 모션으로


BODE의 프레젠테이션은 꽤나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모델들은 슬로 모션의 페이스로 천천히 움직인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패치워크 트라우저나 수비니어 손수건으로 만든 셔츠를 감상하고, 자수, 스티칭, 아플리케, 퀼팅, 핸드 페인팅 등 옷의 세세한 면면을 찬찬히 뜯어보기에 모델의 빠른 걸음은 가당치도 않다는 것이 에밀리 보디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것은 디자이너 본인의 성정과 브랜드의 운영 철학과도 닮아 있다.




디테일이 살아 숨 쉬는 감각적인 보디 (이미지 출처: pinterest)




할머니와 어머니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아직까지 즐겨 입으며 소중히 아끼고 오래 보살피는 일, 브랜드 설립 전부터 오랜 기간 합을 맞춰 온 세계 각지의 퀼트 딜러, 앤티크 바이어들과 관계하고 공생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일, 아주 오래도록 퍼스널 아카이브에 매달린 보디의 콜렉터로서의 정성스러운 노력과 같은 일 말이다.



Bode Fall 2020 Menswear (이미지 출처: vogue.com)



돌고 돌아 스토리


에밀리 보디는 강력한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는 여전히 승산이 있다면서 의도적인 내러티브라도 심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무엇을 수집하는 사람인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인지가 실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패스트 패션의 대척점에 선 덕에, 요즘 유행하는 새로운 것들의 반대편에 서서 옛것을 보듬은 덕에 아무나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고유의 크리에이티브 영역을 확보했다. 컬렉션을 구상하며 그녀는 그녀 자신과 가족, 남편, 친구들의 삶 속으로 깊이 다이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오래된 패브릭이라는 재료로 옷 위에 기록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잘 전달되길 바랐다.


그녀는 밖에서 안으로 관점을 돌렸고, 시간을 앞에서 뒤로 뒤집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만들었다.



Bode Fall 2021 Menswear (이미지 출처: vogue.com)



* 위 포스트는 2022년 4월 1일 매거진 <온큐레이션>에 기고한 글입니다.



[오늘의 추천 힙합]

"Pusha T - Dreamin Of The Past(Feat. Ye)"

칸예와 푸샤가 만나면 무엇이든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추천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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