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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pr 20. 2023

한국 패션의 새로운 기준

무신사 고감도 브랜드 톺아보기 <과거 묻힌 기준과 2000아카이브스>



요.뜨.브


요즘 뜨는 패션 브랜드를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첫째는 비슷한 마인드 프레임을 가진 이들을 결집하는 소재가 풍성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소재에 적당한 시점의 과거 이야기를 아주 매력적으로 묻히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적정 수준의 공감을 부르는 과거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며 즐기는 커뮤니티가 곧 잘 나가는 패션 브랜드와 동의어가 된 것이다.



Kijun 기준




태생 자체가


패션 디자이너는 자기 경험을 시장에 내놓는 사람이다. 그래서 경험이라는 말마따나 앞을 내다봐도 결국 뒤를 돌아보는 것이 되는 아이러니가 패션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에 색다른 힘을 부여하는 기준점이 된다. 그리고 그 힘에 자석처럼 이끌리는 취향 맞는 이들이 함께 모여 오가닉한 브랜딩을 완성한다.



2000아카이브스



시선을 돌려


5년 차 블로거로서 해외 패션 디자이너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느낀 지 몇 해다.


이젠 한국의 패션 브랜드를 소개하는 게 좋지 않겠어, 스눕피? 내친김에 일단 파고들자고 결심했다. 나란 사람이 가장 잘하는 일, 삽질은 무려 성공의 어머니이니까.






With MUSINSA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함께 원석처럼 소중하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국내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디깅을 시작했다.


스토리가 없는 옷은 쳐다도 안 본다던 현대 패션의 마스터 라프 시몬스의 관점을 훔쳐 와 마음에 새긴 채 무신사의 브랜드관을 헤집었다. 고백 하나 하자면 나는 무신사에서 고감도 디자이너 브랜드를 만나볼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게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자세를 바로잡았다는 것이다.



무신사 향기 지리네!


Kijun 기준



Kijun


그리고 나는 우발적으로 Kijun 기준과 만났다.


기준은 2018년 설립된 무려 대한민국 서울 기반의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다.


‘대한민국패션대전’, ‘프랑스예르페스티벌’ 등의 굵직한 대회 수상 이력을 지닌 대표 디자이너 김현우가 전개하고 있으며, 감각적인 상품 큐레이션과 교훈적인 디자인 코디네이션으로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캐나다 몬트리올 기반의 고감도 온라인 편집샵 SSENSE 에센스에도 입점해 기세 좋게 글로벌 끗발을 날리는 중이다.



Kijun 기준



첫인상, 밖


개인 체험으로서의 무비 인사이트 그리고 8090 서울 감성 같은 과거의 것들을 이종 결합하고 재구성해 새로운 패션의 기준(스탠다드)을 세우겠다는 디자이너의 지향점이 달가웠다.


브랜드의 근간이 ‘레트로’라는 디자이너 김현우의 말처럼 당대를 일깨우는 소재와 컬러, 분방한 실루엣은 브랜드의 기분 좋은 패션 요소이며 브랜드의 바깥을 칠하고 있어 먼저 눈에 들어온다.



Kijun 기준



브랜드의 내면


반면 Kijun의 속을 채우는 재료는 영화다.


개봉이 무산된 영화(’인디아나 존스: 아틀란티스의 운명’)를 상상하거나(18FW ‘LE GRAND BLEU’),


시대도 배경도 환경도 한참 다른 두 영화(’퐁네프의 연인들’과 ‘괴물’)를 믹스하고(20FW ‘HOMENESS),


극 중 캐릭터의 옷과 분위기(’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초록 물고기’)를 빌려오기도 한다(21RESORT ‘GREEN FISH’와 23RESORT ‘MY OASIS’).



기준의 20FW, 괴물과 함께 사는 너절하지만, 확고한 취향을 가진 여인을 상상했단다. 취향은 배경을 타지 않는다. 다만 똥고집에서 생길 뿐이다.



기준의 23RESORT,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20년 전 영화로부터 얻은 영감을 녹여냈다. 패션 트렌드의 20년 주기는 과학에 가깝다.



의도적 내러티브


데뷔 컬렉션으로 구체적인 예를 한 번 들어보자.


기준의 18FW ‘LE GRAND BLEU’에서는 해저의 숨은 보물을 찾아 나선 도굴꾼 겸 서퍼 ‘닥터 존스’의 분투를 있는 그대로 형상화했다. 그래서 ‘찢기고, 도려지고, 개조된’ 못난 옷의 꼴이 의도적인 스타일 디테일로 각인된 모습을 볼 수 있다.



Kijun 기준



노란 다이빙 슈트를 입고 바다 위(울트라 와이드 레그 팬츠)에 떠 있는 듯한 주인공, 그의 발아래로 깊숙한 그곳(새파란 바닷속과 어지러운 심해)을 표현하는 옷의 색감은 예술 같고, 마침내 발견한 다채로운 보석은 반짝거린다. 디자이너의 영화적 상상과 심상의 체험이 하나의 패션 컬렉션으로 승화한 것이다.



Kijun의 18FW 컬렉션 ‘LE GRAND BLEU’




근데 이게 돼?


그런데 과연 기존 창작물의 변주만으로 패션의 새로운 기준을 세울 수 있을까? 여기에 힌트가 하나 있다.



아메리칸드림! 랄프 로렌 옹



미국 패션의 기준


랄프 로렌은 흑백 영화의 개인적인 감상을 브랜드의 컬렉션으로 연결한 대표적인 디자이너다.


그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영화적 배경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관람한 영화 속 주인공과 코스튬을 모티브로 삼아(예컨대 카우보이) 패션이라는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이었다.


랄프 로렌은 패션을 수단으로 가장 미국적인 광경을 스토리텔링했다. 그리고 가장 미국적인 패션의 기준을 만들었다.





K-엄마, K-이모


기준이 주목한 건 30년 전, 40년 전의 서울 여성 패션이었다. 거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했다. 느닷없이 불시착한 그때 그 시절의 한국 여인(영화 속 주인공)이 제안하는 패션 디자인에서 어쩌면 우리는 K-엄마와 K-이모의 당차고 개성적이던 젊은 시절의 사진 여러 장을 포개어볼지도 모른다. 글로벌 트렌드 따위 가볍게 비껴가던 가장 한국적인 감성의 현현으로서 말이다.



무신사 도쿄 팝업 트렌딩 K 브랜딩 존 'Kijun 기준'



트렌딩 케이


최근 무신사는 Kijun을 ‘트렌딩 K 브랜드’라 명명하고, 일본에 선보였다. 그리고 도쿄 하라주쿠의 팝업 스토어에서 서울 패션의 뉴 스탠다드를 알렸다. 흐르는 시간을 뒤집고 다양한 영감을 뒤섞은 상상적 편집 패션이 한국적 크리에이티브의 새 기준이 되어 국가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건 패션을 열렬히 사랑하는 패빠(=패션 빠돌이)로서의 내가 보고 싶은 현실이자 미래이기도 했다.



Kijun - 2023 Spring/Summer




익숙하나 낯선


디자이너 김현우는 한 인터뷰에서 큰 개념의 예술뿐 아니라 넷플릭스 영상의 한 장면, SNS 속의 사진 한 장까지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디자인을 진행한다고 했다. 패션 디자이너라고 우리와 다른 차원의 세상을 살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Kijun의 최근 컬렉션(LA BELLA CUBANA와 MY OASIS)에서 이질성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꼈다. 달리 말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신사를 들락거리고 인스타를 열고 닫으며 자신의 패션 리즈 시절을 갱신하려는 MZ 패피가 열광할만한 매혹적인 메시지(누군간 꼭 알아줬으면 싶지만, 남다른 개성은 잃고 싶진 않은 욕심쟁이들을 위한 패션 선물)를 읽은 것이다.



현시점,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도둑의 이름은 '카니예 웨스트'이다.



과거의 편집


SNS에서 우연히 본 사진 속 건물 외벽의 메시지를 자신의 앨범 커버로 활용해 수많은 버즈를 낳은 래퍼 카니예 웨스트, 그가 지닌 글로벌 트렌드의 제왕적 권력은 사람들의 적당한 반응을 부를 법한 익숙함과 신선함을 적절히 믹스하는 능력의 다른 이름이다. 익숙함은 과거이고, 신선함은 편집이다.


확대 해석의 제왕인 나는 패션 브랜드 Kijun으로부터 그런 마음을 전달받았다. 제발, 이심전심이길!



2000아카이브스




2000archives


Kijun이 8090을 묻혔다면, 무신사와 함께하는 또 다른 트렌딩 K 브랜드 ‘2000아카이브스’는 그 타이틀이 명시하듯 Y2K를 듬뿍 묻혔다.




2000아카이브스






Y2K 어서 오고!


컬렉션을 구성하는 로우 웨이스트와 (직접 사진 찍고 편집한다는) 볼드 프린팅, 컷아웃&크롭 디테일과 새틴, 자가드, 레이스, 매쉬 등의 소재적 아이덴티티는 컬러풀하고 대담한, 소란스럽고 도발적이었던 Y2K 패션의 성품을 2023년에 와 재현한다. 요즘 인기 ZZANG인 Y2K 말이다.



2000아카이브스



죽이는 레퍼런스


장 폴 고티에, 존 갈리아노 등의 빈티지 패션 아카이브를 소개하던 세컨핸즈 편집샵으로서의 운영 이력 때문인지 그것들의 영향도 꽤나 많이 느껴졌다. 커리어 초창기부터 이어진 장 폴 고티에의 카모플라주 패턴은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데, 2000아카이브스의 최근 컬렉션에서 묘하게 익숙한 느낌을 전달받기도 했다.


음, 뭐랄까, 브랜드 자체의 인상이 영국 런던에서 유학하며 실득한 두 디자이너의 꽤나 힙하고 다채로운 디자인 인사이트(역시나 빈티지 베이스겠지?)가 00년대의 감성 속에서 색다르게 절여진 느낌이라 더 새로웠다.


오마오마갓, 예상 못 했어, 나, 이런 브랜드도 참 하입하고 매력적인 걸?



무신사X뉴진스의 신년 화보 속에서 2000아카이브스의 ‘Matt Love T’ 티셔츠와 함께한 민지




내 생각은 아무래도


오늘의 글문을 열며 ‘과거’를 묻히는 요즘 ‘인기’ 패션 브랜드에 대해 떠들었다.


다시 한번 왜?


풍성하고 풍부한, 특별하고 개성적인 일상을 잘 연출하면 연출할수록 비례하여 '라이크' 세례가 와르르 쏟아지는 요즘 젊은 친구들(나도 간신히 포함)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역시 담백하고 비릿한 미니멀 패션보다는 다소 투박하지만, 생기로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의 특징을 그대로 투영한 빈티지 향 패션에 가까울 거다.


언제적 스타일에 제2의 숨을 불어넣는 MZ의 패션 실험 정신이랄까. 그리고 그건 매해, 매달 스타일 카피를 갱신하며 소란스럽게 떠드는 패스트 패션에 물린 우리가 나름대로 패션의 아카이브를 탐구하며 진지하게 즐기겠다는 학습의 태도를 분명 대변하기도 할 것이다.



부탁해, 스눕피!


무신사에 줄줄이 입점 중인 한국의 고감도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를 일일이 살펴볼 시간이 없다면, 남는 게 시간뿐인 한가한 스눕피가 대신 톺아보고 몇 개씩 골라 꾸준히 소개해주셨으면 한다면, 이 포스트를 널리 공유해 주세요. 그게 어렵다면 레크리에이션 타임마냥 양옆, 앞뒤에 있는 사람에게 귓속말로 이 사실을 전달해 주세요(휴, 연식 나오네).


아무튼 항상 감사합니다.



* 이 글은 '무신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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