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와 로큰롤의 믹스 <조거쉬> & 고프코어 칸예 <파프롬왓>
세대를 장악한 시대의 아이콘 ‘커트 코베인’과 ‘카니예 웨스트’는 세컨 핸드 빈티지 패션 아이템으로 자기를 대중 전시하고 차별화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아이콘의 지위란 그들이 뿜어내는 창조적 파생 에너지로 주변과 세상을 물들이는 영향력을 수반한다.
걸레짝 같은 누더기 옷에 신선한 가치를 부여한 두 아이콘의 빈티지 패션, 그것의 원형은 중심보다는 주변부, 순응과 인정보다는 반항과 불손, 화려한 부티크와 편집샵보다는 쿰쿰한 창고 구석이나 옷 무덤의 저편과 차라리 맞닿아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행과 시즌을 초월하는 빈티지의 대안 없는 ‘차별성’과 그것을 사랑하는 아이콘을 따르는 골수팬들이 매수세를 몰아 부여한 ‘화폐’의 기능까지 더해지며 빈티지는 젊은 패션 피플을 열광케 하는 최고의 패션 카테고리가 되었다.
오늘은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함께 고감도 국내 패션 브랜드를 톺아보는 두 번째 시간이다.
앞서 눈치를 많이 줬지만서도, 오늘은 ‘빈티지’라는 키워드와 엮이는 두 패션 브랜드를 소개할 참이다. 또 다소 길었던 앞말에 등장한 두 뮤지션(아이콘)이 자연스레 섞이는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무신사 브랜드관을 디깅하는 일이란 지극히 행복한 일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밥을 먹여준다”라고 생각하는 내게, 풍부한 스토리를 지닌 브랜드는 그 자체로 기분 좋은 선물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브랜드 스토리텔링 작업은 개인 시간을 들이는 ‘수고로움’보다 그것의 인사이트가 공유되고 퍼지는 순간의 ‘감동’이 비할 바 없이 더 크고 소중한 일인데, 감도 높은 신예 패션 브랜드를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고 국내 브랜딩을 쉼 없이 지원하는 무신사의 의의도 이와 비슷한 결이 아닐까 생각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우연한 발견의 순간,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빈티지 패션의 한계를 ‘Remake’해 새로운 기회를 만든 패션 브랜드가 있다. 2014년 최행원 디렉터가 설립해 2018년부터는 기성복 라인까지 출범한 레이블 ‘조거쉬(JOEGUSH)’다.
빈티지라는 게
2% 부족한 것들이 많잖아요,
품이나 기장 같은 것이요.
그래서 나를 위해
그것들을 수정해 입다가는
직접 팔아보면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어요.
조거쉬는 ‘빈티지 리메이크’라는 브랜드의 탄생 배경처럼 스튜디오에서 사람의 손으로 직접 옷을 만드는 ‘기능’에 대한 찬사와 함께 <MADE IN ATELIER 메이드 인 아틀리에>라는 표식 문구를 활용한다. 또한 음악 취향의 반영이자 관련 정신의 공표로서 ‘ROCKNROLL 로큰롤’이라는 키워드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하나의 브랜딩 과정을 개인 취향의 객관화로 보는 시각을 빌려와 ‘JOEGUSH’라는 패션 브랜드를 읽어보면, 최 디렉터의 빈티지 의류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영미 록 밴드(예를 들면, ‘롤링 스톤즈’나 ‘너바나’ 같은)와 그들의 음악을 지극히 아끼는 개성적 취향이 고스란히 투영된 메시지가 ‘옷’이라는 매개로 세상에 전해지는 일이 곧 조거쉬의 브랜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위성을 털어낸 가장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조거쉬 브랜딩의 핵심 키워드이자 스타일의 강력한 모티프는 ‘로큰롤’이다.
주지하듯 록 음악과 패션은 불가분적 관계다.
예를 들면, 70년대 영국의 펑크 록씬과 연결된 ‘비비안 웨스트우드 Vivienne Westwood’의 핸드메이드 패션은 이미지적 왜곡과 소재적 변형을 통한 '스토리텔링 패션'의 영원한 레퍼런스가 되었다.
또 90년대 초중반을 강타한 미국의 그런지 록 밴드 ‘너바나 Nirvana’의 꾀죄죄한 패션 스타일 일체는 그 담대한 태도와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도리어 엣지 있는 글로벌 패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관통하는 로큰롤 패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내 멋대로 변형하고, 내 식대로 수정해 입으며, 내 맘대로 해석해 뽐내는 ‘D.I.Y(Do It Yourself)’ 정신에 놓여있을 것이다.
조거쉬는 ‘로큰롤’ 스피릿을 표방하는 패션 브랜드답게 ‘D.I.Y’의 정신을 아주 잘 이해하고 컬렉션에 녹여낸다. 가장 최근 컬렉션인 23S/S 시즌 <Love and Paradise, Rant ‘N’ Rave>를 함께 들여다보자.
아틀리에에서 핸드 디스트레스드와 페인팅 작업을 거친 부츠컷 진 위에 탈부착용 배지와 체인을 활용해 DIY 그 잡채로서의 재미를 부여하거나, 멀쩡한 케이블 니트의 본판과 리브에 말 그대로 해킹(hacking)을 가해서 닳고 닳은 듯한 빈티지 패션의 매력을 가미한다.
사이키델릭 블루종은 그것의 이름처럼 재킷의 캔버스에 사이키델릭 아트 그래픽을 수놓았는데, 입는 이가 심심할 틈이 없도록 양면(리버서블) 공세까지 펼친다.
조거쉬 <아틀리에 라인>의 ‘Two-way zip Vintage T-shirt’는 D.I.Y 패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데, 물이 잘 빠진 빈티지 티셔츠 위에 나염 프린팅을 새기고, 정중앙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지퍼를 매달아 세상에 단 하나 뿐인 티셔츠로 승화시킨다. 마, 이게 로큰롤이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시애틀의 Chubby & Tubby 스토어와 세컨핸드 샵에서 구매한 ‘빈티지 플란넬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드러그스토어 선글라스’ 등과 함께 자기만의 비주얼 컨셉을 구축했다.
그의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이름과 그의 스타일만은 또렷이 기억한다는 사실은 커트 코베인이 지닌 최고 수준의 셀프 브랜딩을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독보적이고 차별적인 빈티지 그런지 패션(과 잘생긴 얼굴)이 그의 개성을 풍선처럼 부풀게 한 커다란 요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Or rocking flannels
all summer
like Kurt Cobain
넌 커트 코베인처럼
여름 내내 플란넬 셔츠를 입었지.
Kanye West - White Dress 중에서
로큰롤 스피릿 베이스의 대표 브랜드 ‘조거쉬’도 그가 흩뿌린 산탄 같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턱이 없었을 것이다.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인 ‘Kurt Flannel Shirts’는 아마도 이러한 전설적인 ‘아이콘’에게 바치는 일종의 노골적인 오마주가 아니었을까.
니트 디자이너 ‘김지혜’와 협업한 22F/W 시즌의 ‘스트라이프 모헤어 니트 풀오버’ 또한 위대한 로큰롤 뮤지션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전기를 다룬 TV 시리즈 <Pistol>의 한 스냅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인데, 아래의 두 사진을 서로 비교해 보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어떤 음악이 대체 왜 좋은 건지를 말로 설명하는 일의 피곤함을 아는 이라면 로큰록 의상과 머천다이즈에 새겨진 문구의 무의미함에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뮤지션으로서의 삶 전체에서 (문학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로 찬양받은 포크 락(Folk Rock)의 파이오니어 ‘밥 딜런’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날 해석하려들지 말아요.
내 음악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냥 말이라고요.
로큰롤 패션 무드 브랜드 ‘조거쉬’의 또 다른 매력은 호기심을 부르는 ‘슬로건’에 있고, 그것은 앞선 ‘무의미’의 의미를 하나의 실례로서 설명해 준다. 그리고 이번 시즌의 슬로건 <I LOVE VODKA>는 그들의 티셔츠와 메쉬 캡 위에서 그 대문짝만 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Do you like fatherhood?
아빠로서의 삶은 어때요?
Vodka? I love vodka.
보드카? 보드카 쩔지.
93년 9월,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 참석한 ‘커트 코베인’에게 던져진 한 인터뷰어의 별안간의 공습 질문과 사생활을 캐물으려는 속셈의 싹을 꺾는 커트 코베인의 엉뚱한 대답은 우문우답의 경지를 보여주는데,
이토록 짧고 유니크한 클립 영상의 멘트를 시즌의 슬로건으로 연결하고 상품 태그(tag)화한 ‘조거쉬’의 덕후적 브랜딩은 ‘덕업일치’의 삶을 꿈꾸는 내게 참 부러운 지점으로 다가왔다. 왜긴 왜? 그냥 보드카가 좋다니까!
My cat is Rockstar
& I’m a manager
한국의 반려묘와 집사 열풍에 관한 ‘조거쉬’ 고유의 해석을 한 줄 카피에 담아 멋지게 쏘아 올려 큰 인기를 끌었던 지난 22F/W 시즌 컬렉션 <My cat is Rockstar>의 슬로건 “My cat is Rockstar & I’m a manager”는 세상 돌아가는 소리를 민첩하게 읽고 영민하게 반영하는 트렌디한 패션 브랜드로서의 또 다른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패션이란
‘우리가 사는 방식’
그리고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계된 것이다.
한편 우리가 사는 방식,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에 전방 탐지 레이더(Forward Acquisition Radar)를 켜고 영감의 씨앗을 찾아 나서는 패션 브랜드도 있다.
오늘 스눕피가 두 번째로 소개할 무신사의 고감도 패션 브랜드는 ‘파프롬왓(FARFROMWHAT)’이다.
주변의 영감(이를테면 여행이나 일상 혹은 대자연과 같은)을 토대로 제작한 하이 퀄리티 패션 아이템으로 그것을 입는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퍼뜨리고자 한다는 ‘Giver(주는 사람)’로서의 브랜드 마인드셋이 참 좋아서 꼭 한 번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프롬왓’은 시즌별 한정 수량만을 오픈하며 ‘리셀’을 부르는 브랜드로 이미 국내 남성 패션 피플 사이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바다 건너의 브랜드에만 온통 정신을 팔고 있던 나로서는 다소 머쓱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심지어 145만 원이 넘는 고가의 브랜드 아우터(FAR LEATHER 3D POCKET PULLOVER)가 무신사 입점 하루 만에 품절되기까지 했다니, 뭐지? 나만 빼놓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군 입대 전까지 옷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입대 후 카니예 웨스트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의 패션을 접하며 관심을 갖게 되었죠.
- 파프롬왓 송성호 Founder
2005년부터 ‘Kanye West’를 덕질하며 ‘Ye’의 처돌이(줄여서 Ye돌이)를 자처해 온 내게 패션 브랜드 ‘파프롬왓’이 무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그 출발점은 너무나 반갑고, 고마우며, 공감을 부르는 ‘납득’의 총체와도 같았다.
‘파프롬왓’의 주옥같은 빈티지 워싱과 군데군데 터져버린 디스트레스드 디테일이 가미된 후드 스웨트셔츠와 쇼트 슬리브 티셔츠,
전사 같은 위용을 자아내는 오버사이즈의 워크 재킷과 봄버 재킷의 볼드한 실루엣, 잔여 작업이 없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듯 기능성과 실용성의 상징인 카고 포켓이 큼직하고도 절실하게 매달려 있는 와이드 팬츠까지,
옷의 완성도와 디테일에 집착하며 주변 사람 여럿 잡는다는 ‘칸예’의 완벽주의적 성향까지도 옮겨 붙은 듯한 ‘파프롬왓’의 스타일 아카이브는 하나의 폭발적인 ‘에너지’처럼 내게 다가왔다.
실제로도 아이템의 퀄리티 극대화를 위해 생산 과정에 열과 성을 다한다는 F.F.W 선생님들이다.
닳고 닳은 듯한, 헌 옷 같은, 고로 ‘빈티지’하다며 통칭하곤 하는 옷의 치명적인 매력과 더불어 이제는 어엿한 대중 패션의 큰 갈래가 된 'Gorp 고프 패션'의 에센셜 아이템이 잔뜩 들어앉아 있는 ‘파프롬왓’의 대표 카탈로그를 둘러보면 건수를 찾는 MZ 남성 패션 피플의 지갑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역시 세상에 이유 없는 인기란 없는 것이다.
브랜드 ‘파프롬왓’의 출발점에서 불을 당긴 별종의 이인(異人) 카니예 웨스트는 ‘스피릿 티셔츠(Sprit T-shirt)’의 개념을 도입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른 프린팅이나 텍스트를 담은 옷을 입곤 한다(예컨대 힘을 내고 싶은 절체의 순간에 고인이 된 어머니 Donda의 사진이 프린팅 된 옷을 입고 출근하며 힘을 받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는다는 주변인의 전언도 많다.)
따뜻한 5월, 춘곤증의 어택으로 새해의 결심은 개나 줘버린 채 무언가에 이끌리듯 살고 있다면 ‘파프롬왓’이 건네는 스피릿 텍스트(“KEEP A PACIFIC MIND”, “FIND YOUR NATURAL” 등)와 함께 자기 계발에 취해 정신을 무장해보는 건 어떨까?
참고로 위의 블루 웨이브 캡은 무신사 단독 발매요;;;
"좋은 옷, 멋진 디자인으로 좋은 영향을 퍼뜨리고 싶어요.
저희 옷을 입는 아침부터 설레는 시작으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길 바랍니다."
빈티지 패션과 고프 패션이 이토록 폭넓은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한 나의 최근 생각을 밝히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젊은 세대가 지닌 옷에 대한 태도는 이제 유약한 ‘Respect’에서 건강한 ‘Disrespect’으로 옮겨갔다. 우쭈쭈 우쭈쭈, 아껴 입으며 모시는 신줏단지에서, 나의 삶, 나의 개성, 나의 활동을 존중하면서 보다 자유롭고 건강한 태도를 드러낼 수 있는 휘뚜루마뚜루 패션 아이템으로의 관심 전환 말이다. 그리고 그건 가성비도 가심비도 아닌, 매일 입고 오래 입는 옷의 본질을 똑바로 이해한 똑똑한 소비로의 진화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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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0to1hunnit/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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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무신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