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즈 보너, 마틴 로즈, 파리아 파르자네 그리고 니콜라스 데일리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니콜라스 데일리'는 문화적 다양성에 관심이 많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어머니와 자메이카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양 세계관이 상충하는 성장기를 보낸 탓이다.
돈벌이의 수단보다는 레게 뮤직 씬을 지원하겠다는 의의로 레게 클럽을 운영한 부모님으로부터 음악적 감응력을 물려받은 그의 크리에이티브 원천은 단연 음악이다.
피터 토시, 마일스 데이비스, 지미 헨드릭스 등의 뮤지션은 그에게 최고의 영감 레퍼런스다. 단지 음악만이 아니라 당대의 그들을 감싼 패션 아이템은 그가 컬렉션 아이디어를 뻗어가는 시작점이 된다.
그는 원류를 따지는 걸 좋아하고 궁금한 게 많아서 이 옷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레퍼런스는 무엇인지, 또 무얼 말하려는 건지 따위를 파고들어 끝내 그것들의 본질을 찾아내 디자인에 적용한다.
한 매체는 이런 그의 패션 레이블 'Nicholas Daley 니콜라스 데일리'를 설명하며 <과거를 되살려 미래를 비춘다>라는 기막힌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 마틴 로즈, 파리아 파르자네 그리고 오늘 소개한 니콜라스 데일리까지, 이 네 사람은 모두 영국을 대표하는 맨즈웨어 패션 디자이너들인데, 몇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첫째는 스눕피가 한 번씩 소개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스눕피가 많이 아낀다는 것이며, 셋째는 스눕피가, 아니, 자기의 태생적 개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비롯하여 그들의 성장기를 둘러싼 것들과 자기가 진심을 다해 좋아하던 것들을 컬렉션에 차곡차곡 담아 던졌다는 것이다.
소위 '좀 친다'라는 패션 크리에이터들의 인터뷰를 샅샅이 뒤져보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그게 어느 시기였던 그들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를 가지고 고민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창의 활동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원천적 고민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차라리 그들은 하고 싶은 말, 소개하고 싶은 문화, 섞고 싶은 레퍼런스로 늘 머릿속이 가득한 사람들에 가까웠고, 그것을 공개하는 순서와 표현하는 방식을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시작부터 저는 제가 원하던 것에
꽤나 분명하고도 명백히 집중했어요.
- 니콜라스 데일리
내 인생의 배경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곧 나의 크리에이티브로 승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면,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타고난 인생을 긍정하는 태도 하나만 장착해도 '헛된 삶의 궤적'이란 것이 세상에 없는 개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적(?) 생각을 해봤다. 더 심각한 것은 나의 이러한 생각이 다만 패션 디자인에 국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웬만한 생활의 카테고리에도 적용돼 비슷한 종류의 교훈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순수히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도
자기가 쓰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옮겨낸 적은 없어요.
자기 안에 그런 게,
쓰고자 하는 순수하게 개인적인
무엇이 없으니까.
전부 이런저런 것에 대한
반응들일뿐이지요.
-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언젠가 솔직히 말했다.
모든 작가는 전부 이런저런 것에 대한 반응으로 글을 쓰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삶의 여유가 없다면, 타고난 자기 태생의 조건을 긍정할 용기도 없다면, 그것만큼 무감각한 삶이 또 어디 있을까? 그것은 정말이지 무엇에도 반응할만한 재미가 없는 따분한 인생, 그 자체일 것이다.
당장 하고 싶은 말, 들려주고 싶은 경험, 섞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부족하다면, 무엇이든 잡식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들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아카이빙하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자꾸 이렇게 저렇게 반응하며 구르다 보면 또 새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저도 역시 좋은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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