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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Nov 14. 2021

옷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남자가 있다.

Glenn Martens 글렌 마틴의 'Y/Project' 와이 프로젝트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화장실과 주방 디자인, 가구 스케치가 전부인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패션 전공에 문을 두드린 벨기에 브뤼헤 출신의 디자이너 글렌 마틴, 예술 같이 합격 통보를 받게 된 칼 라거펠트가 누군지도 몰랐던 패션 문외한은 패션에 미친 동기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지지부진했던 초반, 하지만 그는 종국에 1등으로 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장 폴 고티에'의 주니어 디자이너로 패션 신에 입문한다.




Glenn Martens (이미지 출처: WWD)






오늘 소개할 브랜드는 디자이너 글렌 마틴이 이끄는 프랑스 파리 베이스의 패션 레이블 'Y/PROJECT'다.








와이 프로젝트는 중세 건축과 같은 역사적 레퍼런스를 현대적인 팝 컬처와 절충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컨셉과 디자인으로 베트멍, 자크뮈스 등의 패션 브랜드와 함께 관습적인 파리지앵 패션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킨 감각적인 현대 패션 브랜드로 손꼽힌다.




헝클어진 실루엣이란 말이 되는 말일까?




Y/Project Spring 2022 Ready-to-Wear (이미지 출처: Vogue)





글렌 마틴이 디자인하는 와이 프로젝트의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패션은 사람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또 어떤 감정적인 체험을 부르는 듯하다. 한 피스의 옷에 어떻게 이런 개성과 유머를 멋들어지게 담아낼 수 있는 건지 놀랍기만 하다. 세심히 공들인 예술 작품 같은 그의 의상은 요즘 잘 쳐주는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먼데, 크고 작은 디테일이 곳곳에 숨어 있고 소재며 색감이며 크기가 서로 다른 의미에서 무척이나 풍부하고 화려하다.




둥글게 말려 굴곡이 있으며 빙글빙글 꼬아 짜진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Y/Project Fall 2021 Ready-to-Wear (이미지 출처: Vogue)





본래 Y/PROJECT는 2010년 모로코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Yohan Serfaty 요한 서파티'가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와 공동 창업한 맨즈웨어 레이블인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공석이 된 자리를 2013년부터 '요한 서파티'의 첫 어시스턴트로 활약한 바 있던 글렌 마틴이 이어받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음침한 기운이 감돌아 뒷골마저 당기는 Yohan Serfaty 시절의 Y/Project, 혹시 버드박스?




레더 소재가 돋보이는 다크 웨어로 점철한 고딕 패션을 주로 선보였던 '릭 오웬스' 풍의 Y/PROJECT 시그니처 스타일은 사실 글렌 마틴이 추구하던 미학과는 정반대였는데, 한 매거진 인터뷰를 통해 글렌 마틴은 그의 스승과 패션 취향도 매우 달랐을뿐더러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그의 팀에 들어가 브랜드를 다시 이끌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꺼렸음을 밝히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리를 수락하고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컨템퍼러리하고 모던한 감각을 그곳에 천천히 이식하게 된다.




튈, 튈, 튈하다. Y/Project의 2020년 봄 컬렉션 (이미지 출처: Vogue)





건축을 공부했던 이력 탓인지 '글렌 마틴'은 인간의 몸 위에 컬렉션의 의상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개념으로 패션 디자인에 접근한다(다리 위의 청색 빌딩이 그에겐 청바지인 셈이다). 그래서 브랜드의 특징으로 자주 언급되곤 하는 추가적인 소재를 활용한 독보적인 볼륨감의 연출이나 과장된 아웃라인도 나름의 근거와 맥락을 갖추게 된다(5개의 소매를 가진 셔츠라니!)




Y/Project의 2021년 봄 컬렉션 (이미지 출처: Vogue)





또한 벨기에 최고의 관광 도시인 '브뤼헤'에서 나고 자란 배경 탓에 역사와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어서 중세 시대 건축물의 구조적 모양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건설적인 패션 실험을 하는 등 독창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관련하여 드리스 반 노튼이나 라프 시몬스 등 벨기에 출신의 전설적인 선배 디자이너와의 디자인적 비교에 대하여 비도 잦고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성장하며 숨은 매력과 아름다움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는 벨기에 사람들의 '의미'와 '컨셉'에 대한 집착을 언급하는 그의 인사이트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역시 크리에이티브는 보인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고 들린다고 들리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니까.




Y/Project Fall 2021 Ready-to-Wear (이미지 출처: Vogue)





유려한 볼륨감은 와이 프로젝트의 DNA라고 할 수 있겠다. Fall 2020 Ready-to-Wear (이미지 출처: Vogue)





와이 프로젝트는 입는 이의 '자유'와 '개성'을 축복하는 패션 레이블이다. 그래서 컬렉션 의상 개별 피스의 입는 방법이 네다섯 가지를 넘어가기도 하고, 그에 따라 하나의 옷이 매일 다른 기분과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새롭게 연출되는 비전을 지향한다. 그것은 글렌 마틴이 옷 하나하나마다 심혈을 기울여 특유의 반전을 줄 수 있는 재미있는 디테일을 꼭 집어넣는 이유이기도 하다.





Y/Project Spring 2019 Ready-to-Wear (이미지 출처: Vogue)





글렌 마틴이 이끄는 와이 프로젝트는 협업에도 매우 적극적인데, UGG, 캐나다 구스, FILA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함께하며 특유의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를 녹여내기도 했다. 특히 UGG와 함께하며 공개한 따이 하이 어그 부츠는 인터넷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정도. 애니웨이 Y/Project의 모든 협업 아이템은 극적으로 재미있다. Glenn Martens, 이런 극적인 사람아!





UGG x Y/Project in 2018



Canada Goose x Y/Project in 2020



FILA x Y/Project in 2021




작년 10월에는 이탈리아의 전통 있는 글로벌 프리미엄 데님 브랜드 '디젤'이 역사상 최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와이 프로젝트의 '글렌 마틴'을 선임해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받고 있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전성기 이후 오래 고전하던 브랜드의 새로운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힘을 내요, 글렌 파워!




다시 크게 뛸 것 같은 직감이 온다. Diesel Spring 2022 Ready-to-Wear (이미지 출처: Vogue)





갑자기 콜라보의 샛길로 빠졌으니 다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해보겠다. 불완전하고 복잡한 디자인, 의도적으로 박살 낸 젠더의 경계, 뒤틀리고 비비 꼬여버린 실루엣, 지나친 오버 사이즈의 볼륨감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글렌 마틴의 와이 프로젝트는 일반의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고 특유의 미학을 이해하기에 결코 쉽지만은 않은 패션 브랜드다. 디자이너 본인도 '나는 기본적인 디자인은 절대 안 한다'라고 말할 정도이니까. 무서워;;;





Y/Project Spring 2019 Ready-to-Wear (이미지 출처: Vogue)





<THE LAST MAGAZINE>의 한 에디터는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파리지앵 스타일과 벨기에 반항 정신의 혼합으로 그의 패션 디자인을 이해하기도 한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두 개념을 섞었다는데 그것이 쉽게 이해되면 반칙 아니겠습니까?




튈, 튈, 튈, 튈, 튈하다
Y/Project Spring 2018 Ready-to-Wear (이미지 출처: Vogue)






그를 깊이 탐구하다가 개인적으로 알아챈 그의 크리에이티브 힌트는 다음과 같다. 그는 패션 관련 행사에는 일절 가지 않고, 지하철에서 사람을 관찰하면서 영감을 얻으며, 고독한 삶을 즐기고, 무드 보드도 활용하지 않으며, 학창 시절에는 패션이 아닌 음악과 미술에 관심을 두었고, 패션 디자인을 '건축'의 시각으로 접근해오고 있다는 것.





하, 존멋이구나!




남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남과는 다른 말로 이야기하라는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명언이 생각나는 디자이너 '글렌 마틴'과 그의 패션 레이블 'Y/Project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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