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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Aug 18. 2022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좋아서 하는 선택과 두려워서 하는 선택




만약 자신이 '해냈다'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 해내지 못한다.

<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中




길을 잘못 들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것이 낭만적으로 반전할 여지가 있는 건 여행길 혹은 소설 속에서나 자연스럽다. 현실 속에서는 방향을 잘못 잡고 가다간 좌충우돌하거나 낭패하기 십상이다.



2008년의 가을이었던 거 같다.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대학교 불문학과에 수시 논술 전형 참석 차 아빠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늦었다. 수능 시험장에 늦어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허겁지겁 서두르는 인생 선배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곤 했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나였다. 간신히 강의실에 입장했더니 시험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곳엔 대부분 여학생들이 앉아 있었고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녀들 사잇길을 헤치며 착석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전형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긴 지문이 도통 잘 읽히지 않았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찬찬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방황하는 일, 그리고 그로 인한 여파가 약속하는 건 불완전과 불안정이라는 걸 미약하게나마 감 잡은 날이었다.



anyway 인생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했다. 좋아서 하는 선택과 두려워서 하는 선택.



돌아보면 다행히도 내 삶의 지난 길은 좋아서 하는 선택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그것도 무척이나 많이! 하지만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많이 했다. 아니, 그건 뭐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래서 눈치만이 살 길이라 믿었던 학창 시절에는 내 인생의 바닥면에 촘촘하게 눈금자를 그려놓고 또래 친구들이 행한 다양한 선택을 점 찍거나 선 그으며 나의 오늘과 비교해 보곤 했다. 물론 그것은 내가 '좋아서 한 선택'이 뒤처지거나 탈락할까 봐 '두려워서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좋아서 한 선택'의 연속을 '두려워서 한 선택'으로 덮어버리는 아이러니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해졌고 이따금씩 내 일상을 짓눌렀다.



하지만 어떻게 되든 좋아하는 걸 일단 따르고 보자는 내면의 소리에 복종하며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불분명한 두려움에 벌벌 떨며 내 일상의 작은 행복을 저당 잡히기엔 당장 좋은 것들이 한 트럭이라 그렇다.



젊은 날의 방황이나 실수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지만 우연한 성공 이후의 회고 속에서 가장 빛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다. 어찌 될지 모르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일단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일이 어찌 방황이나 실수가 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에잇! 나도 어지간히 한국적 규율에 가스라이팅을 당했나 보다.



그저께 유튜브의 쏟아지는 영상 더미 속에서 '송길영' 박사님의 최근 영상이 몇 개 눈에 걸려 자기 전에 좀 봤다. 어찌나 달변이신지 눌변인 나는 입을 벌리고 봤다.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서른셋의 철없는 고민을 작살내는 선생님의 빈틈없는 이야기에 얼빠져버렸다. 뚜렷한 목표 없이 그냥 하는 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건데 이걸 어쩌나ㅜㅜ


그리고 갑자기 노래 추천!

옛날 힙합이 역시 좋아요. 멋진 앨범 속 좋은 곡입니다. 샘플링 훅이 끝내주거든요. 유희열 선생님이 차라리 힙합을 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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