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동생, 코드쿤스트, 타블로, 이하이, 1만 보 걷기, 광고
[1]
미국에서 열 살 어린 사촌 동생이 왔는데 사고로 크게 다친 누나 때문에 철이 들었는지 또래들의 시시한 사랑 고민이 우습다고 했다. 속사정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다가 깍두기 한 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도리어 자칫 오만해질 수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했다. 타인의 종류 다른 괴로움에 공감까진 못하더라도 그것을 업신여기는 동생이 되지는 않기를 바랐다. 아무리 성긴 관계 사이에서도 말이다. 이 친구가 코드쿤스트의 노래 <비네(Rain Bird)>의 타블로 Verse를 좀 들어봤으면 하는데, 한글 가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고 또 괜한 오바 같고 아무튼 좀 아닌 것 같아서 나 혼자 들었다. 다들 지독하게 고민하면서 인생 산다. 아닌 척할 뿐이지.
또다시 비 오네 비 오네
먹구름이 달을 또 삼키네
별보다 많은 붉은 십자가들이
점재하는 밤
그 혈흔이 말을 해
내게 슬픈 단서를 속삭이네
잔인하고 처참한 이곳 살이에
이렇게나 많은 이를 열망 앞에
무릎 꿇게 한 이 도시를 고발하네
근데 나는 왜 기도라고 부르기엔
하찮은 고민들로 손을 무릎 위에
세상에게 들릴까 봐 숨을 죽이네
비가 내릴 때만 우는 새
고작 사랑 따위 때문에
잠 못 이루다니
죄책감이 드네
복에 겨운 앓이
눈물과 죄는 많이 닮았나 봐
내 명치를 아리게 해
짓지 말아야 해
[2]
일주일에 3일 이상은 하루에 1만 보를 걸으려고 노력한다. 출퇴근 길의 걸음수를 감안하여도 매일 1만 보를 걷는다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은 아니라 (체력적으로) 부대낀다. 하지만 워낙 생활이 단조롭고 지루한 편이라서 유튜브 보고 책 보고 영화 보고 잡지 보는 시간만 조금 포기하면 (물리적으로)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 그래도 목표에 가깝게 실천하고 있다. 평일 밤에 조용한 대학교 캠퍼스 안을 걸으면 귓속의 노래에 낮보다 더 감정적으로 집중하게 된다. 며칠 전엔 코드쿤스트의 노래 <O>를 들으며 걷다가 이하이의 가사가 너무 좋아서 되게 놀랐다. 그래서 음악을 끄고 벤치에 앉아 노래 가사를 구글링하여 몇 번인가를 읽고 또 읽었다. 쩐다?
스쳐 지나간 애들과는 다르게
정착하는 법을 알려주네
나만 알 수 있게 해 줘 너의 단점들도
가뭄에 단비처럼 목마른 나에게 내려줘
무심한 표정과 다른 섬세한 마음
넌 개중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별함
유일하게 내 심금을 울리네
그리곤 you said you said you said
[3]
아까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골라 읽은 책에서 지금은 특별한 시대라면서 예를 들길 요샌 자기의 정체성을 큐레이션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현장 소식과 미국 래퍼나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의 감각적인 이미지를 구경하길 좋아해서 4,500여 개의 인스타 계정을 팔로잉하고 있는데, 돋보기 버튼을 클릭하면 #광고, 라는 태그로 범벅이 된 국내 인플루언서들의 계정이 피드에 엄청 많이 떠서 요새 피로감이 확 느껴졌다. 내가 굳이 또 사진을 자꾸 클릭을 해서 보니까 계속 뜨는 거겠지만, 일반인의 계정 속에 자연스러운 일상임을 가장해달라며 침투해 아직 자신의 그 건재함을 자랑하는 ‘광고'의 생명력에 다시금 놀라게 되는 요즘이다. 내가 2016년도 1학기에 광고학 전공을 마무리하면서 수강한 마지막 전공 수업의 마지막 강의에 겸임 교수님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첫 장에 '광고는 죽었다.'라고 써놓으셨던 걸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 #광고는 죽지 않았네요, 교수님!
아무튼 뭐가 죽었다며 어필하는 다소 거칠고 사나운 메시지는 조만간 그것이 활활 더 불탈 거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노래 하나 추천하고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미국 힙합계의 크립토커런시 제왕,
명견만리좌 Nas 나스의 옛 곡입니다.
엄청 유명한 노래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