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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Jun 14. 2022

정직하다는 것에 대하여

기리보이 노래를 듣다가 엄마와 아빠 생각이 날 수도 있다.



1998년, 내가 살던 인천의 한 아파트 언덕 아래 작은 빌딩 2층에 PC방이라는 게 생겼다. 친구들과 나는 방과 후면 그곳에 놀러 갔다. 기억도 가물하지만 아마 천 원을 내면 한 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담배를 피워도 무방한 시절이어서 유리로 된 문을 밀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실내 안은 희뿌연 연기와 쿰쿰한 냄새로 가득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나는 안방 탁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위에 놓인 집 전화기를 들어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돼지저금통에서 500원짜리 동전 3개를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기 위해서였다. PC방 한 시간, 과자 한 봉지. 그때 엄마는 내게 단 한 번도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내게 무언가를 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는 엄마가 편하고 좋았기에 그런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단 한 번도 500원짜리 동전 4개나 5개를 가져가지 않았다. 나는 늘 딱 3개만 가져갔다. 내가 4개나 5개를 가져갔어도 엄마는 몰랐겠지만 나는 내게 안 된다고 하지 않는 좋은 엄마에게만은 정직하고 싶었다. 동전 3개와 나 그리고 엄마, 그것은 1998년의 일이다.





2009년,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인천 시내 모든 엄마와 아빠의 진실된 바람, 인서울. 여전히 학업 수행능력으로 줄을 세우면 전국 꼴찌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인천, 그중에서도 바닥을 기는 우리 동네에서 나는 그것을 해냈다. 엄마도 아빠도 대학을 나오지 못했기에 나는 그들이 못한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다. 대학에 간 걸 자랑스러워하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나도 덩달아 벅찼다. 하지만 더럽게 잔잔한 성격 탓에 대학 생활에 조금의 환상도 품지 않았기에 실망할 것도 없었다. 나는 놀 줄도 몰랐고 떠들 줄도 몰랐다. 그저 술이나 마시고 책이나 읽다가 잠이나 잤다. 대학에서는 아버지가 서초동의 은행장이라거나 어머니가 서울대학교를 나왔다거나 교수님이라거나 아무튼 멋지고 잘난 집안의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어느 날엔 서초동의 한 은행에서 은행장을 하는 아버지를 둔 형의 삶을 궁금해한 적이 있다. 잠깐이지만 내가 너무 싫어졌다. 하지만 나는 나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해 듣고 즐거워하는 엄마와 아빠여서 고마웠고, 나라도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엄마와 아빠가 희생한 모든 것에 감사했다.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과 기회를 얻은 사람, 그래서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만은 정직하고 싶었다. 그건 오만이나 가식이 아니라 나의 진실된 마음이었다.



2022년, 서른 하고도 세 살을 더 까먹었다. 이십 대의 전부를 함께 보낸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3년, 몇 번인가의 연애를 거듭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왜 이렇게 안 풀리지? 이십 대의 절반을 할애해가며 너무나 하고 싶던 일을 위해 지치도록 노력했으나 그 단단한 문은 조금도 열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부딪혀보자며 돌진해 들어간 첫 직장에서는 노상 깨지기만 했다. 이게 아니다 싶어 나오니까 바깥은 추웠다. 제대로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하니 서른이었다.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 그다지 후회도 없지만 딱히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도 힘들다. 얼마 전 회사에서 대행업체를 구하던 중 예산 문제로 거절의 메일을 한 통 보냈다. 성격 탓에 또 구구절절했나 보다. 거절 의사만 밝히면 되는데, 자세하게 상황까지 설명해줘서 감사하다고 하셨다. 머쓱했다. 이것도 일종의 정직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꽤 높은 직급의 여성 분이셨는데 나 같은 몹쓸 TMI를 본 적이 있으셨을까 싶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건 누구나 엄마와 아빠의 영향 아래에 있다. 엄마와 아빠는 평생 내게 하지 말라는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래서 감사했고 자주 정직할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당신들이 못한 일을 내가 해냈을 때 기뻐했다. 나는 그래서 상황 설명하기를 즐겼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를 소상히 설명해줘야 직성이 풀리던 것이다. 정직함과 구체성, 나를 설명하는 피곤하고 매력 없는 소재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물려준 보물 같은 가치라고도 생각하기에 만족한다. 젠장!



아까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면서 기리보이의 노래 '엉망진창'을 듣다가 문득 엄마와 아빠가 생각났다. 그래서 이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이게 무슨 의식의 흐름일까. 그런데 사실 이 노래를 들으면 전 여자 친구가 생각나야 정상이다. 혹시 잘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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